한때 신이 준 선물이라 불렸던 석면은 1920년대 말부터 그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우 31년 석면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지만 같은해 방화재로 석면을 뿌리는 기술이 개발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기술은 사장되지 않은 채 2차 세계대전 중 함선을 건조하면서 갑판과 방수벽에 석면을 살포하는 것으로 이용됐다. 전쟁 중 방화복 용도로도 사용됐으니, 그 위험성을 어느 정도 알고도 석면의 매력에 빠져 계속 사용한 셈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뒤 포도주·맥주·의약품 등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필터에 석면이 사용되기도 했다고 하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듣기엔 끔찍한 역사다.
이상의 석면 사례에서 보듯이 현재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라 할지라도 미래엔 심각한 위험물질로 파악될 수 있다. 앞서 박물관의 노동자 모습은 후세대를 향한 경고의 의미인 것이다.
석면과 같이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물질이 오랜 기간 합법적으로 사용된 배경에는 기업과 전문가들이 연계해 기업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발표하는 이른바 '고용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재해 위험요소 등을 조사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결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 전문가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에서 고용과학의 폐단을 목격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고용과학'이 문제가 되는 지점에 초일류 기업 삼성이 있다. 삼성백혈병 논란이 일자 삼성은 미국 인바이론사에 조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역시나 "문제없다"였다. 하지만 인바이론사의 조사 결과를 두고 그 조사방법 등의 오류가 발견돼 신빙성에 문제가 제기된 상태다. 이런 와중에 가장 고통 받는 이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희소질환을 얻고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싸우는 피해 노동자들이다.
김종영 교수(경희대 사회학과)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산재 증명을 위한 역학조사에서 "기업과 피해자는 1차적으로 과학 지식으로 대결을 펼친다"며 "이런 대결에 임하는 사회운동과 시민단체는 과학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는가와 문제가 해결되도록 사회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지 유무가 승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기업에 비해 턱없이 힘이 부족한 피해 노동자들은 거리 혹은 병상에서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