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혜
금속노조 법률원
송무차장

총선이 끝났다. 한나라당에서 이름과 로고와 색깔만 바꾼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의 국회의원석을 차지했고,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던 민주통합당이 되레 국민의 심판을 받은 꼴이 됐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의 다양한 분석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다들 예언가가 된 듯, 대선을 향한 가상 시나리오들이 난무한다.

시끄럽고 복잡하기만 한 총선과 대선의 사이, 이 시기 속에 새삼 노동자들,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생각해 본다. 22명의 동료과 가족을 잃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조합원들을 떠올려 본다. 총선결과를 바라본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대선을 바라보는 생각은 어떨까.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필자가 실무지원을 맡고 있는 소송 건수만 해도 현재 100여건이 된다. 몇 년씩 공방을 펼치고 있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해고 당하고, 임금 못 받고, 직장폐쇄 당하고, 파업 참여했다고 손해배상·가압류에, 집회 참석했다고 벌금에, 하나하나의 사건 속에는 구구절절 다양한 사정이 담겨 있다. 다들 현행법 자체가 문제여서 피해를 보기도 하고, 현행법이 실제 제대로 집행이 안 돼서 피해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법을 뜯어고치자”고 주장하기도 하고 “법 좀 제대로 지켜라”고 외치기도 한다. 모두 옳다. 어찌 됐건 현재 법은 노동자의 편이 아닌 셈이다.

때문에 법을 바꾸자고 했다. 노동자로 일하기가, 노조활동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현재 최저임금 가지고는 먹고살기 어렵다고. 억울하게 잘리고 쫓겨났는데 법이 보호를 못해 준다고. 그래서 법을 바꾸자고 했다. 노동법을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정당을 만들고, 조합원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돈을 모으고 선거운동도 직접 하면서 노동자 정당의 국회의원 한 명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평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온갖 정치 분석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조합원들은 의외로 차분한 듯하다. 익숙해서 그런 걸까.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걸까. 어쨌든 선거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언제 우리가 정치인들 보고 투쟁했나. 가던 길 가면 된다”라는 씩씩한 목소리가 오랫동안 싸움을 해 온 노동자들의 입에 나오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일찍이 여소야대 국면을 통해 8월 말 노동법 재개정 총파업을 선언했다. 여소야대가 안 됐으니 민주노총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나. 아니다. 국회권력의 과반 이상을 저들이 차지했다면, 더더욱 국회 밖의 권력을 통해 저들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 권력은 노동법 재개정의 절실함을 피부로 느끼며 하루하루 사는 현장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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