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학 SC제일은행지부 위원장

지난 2005년 이후 SC은행 노사는 바람 잘 날 없었다. 그해 제일은행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합병되면서 노조는 독립경영 보장을 요구하며 본사 로비를 점거하고 천막농성을 벌였다. 농성은 무려 240일간 이어졌다.

이후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부행장 퇴진과 해외 부서장들의 낙하산 승진으로 활용된 본점 부서 축소 투쟁이 전개됐다. 지난해에는 개별성과급제와 후선역제도 도입에 반발해 노조가 은행권 최장기 파업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지난해 12월 임원선거를 통해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23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서성학(46·사진) 위원장이 지부 간부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과 겹쳐 있다. 서 위원장은 지난 23일 오전 서울 공평동 SC은행 본점에 있는 노조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장기 파업의 여파가 급격히 늘어난 노동강도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사가 서로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실질적인 협상을 이끌어 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두 달 전 최근 2년간 맺지 못한 임단협이 일괄 타결됐다.

“사측의 많은 양보를 이끌어 냈다고 본다. 호봉제를 지켜 냈고, 사측이 강력하게 요구하던 개인별 성과급제 도입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과급 총 재원이 12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후선발령 등을 포함한 임단협의 상당수 의제는 태스크포스팀(TFT)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현재 사측이 TFT 구성을 요청해 왔는데, 노조는 5월 이후 임단협과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 장기 파업을 겪고 얼마 되지 않아 협상을 타결한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2005년 제일은행이 합병된 이후부터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으로 본조 부위원장을 맡아 누구보다도 열심히 투쟁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싸움이 길어질수록 노사 사이에 놓인 벽이 점점 높아져 가는 것을 느꼈다. 지난해 64일간의 파업은 성과도 있었지만 한계도 보여 줬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혼자서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일 때, 우리는 콘도를 빌려 파업투쟁을 했다. 대중들의 호응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파업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이 평행선만을 그리는 노사관계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위원장으로 출마하면서 임단협 타결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 집행부가 탄생하면 투쟁성이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반복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 낼 수가 없다. 사측으로부터 정당한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받고, 구체적인 것들을 조합원의 손에 쥐어 주는 집행부를 만들고 싶었다.”

- 지금의 노사관계는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아직 출발단계라서 명확히 구분된다고 하긴 힘들다. 분명한 것은 과거와 다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은행장과는 한 달에 한두 차례 대표자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핵심 경영진으로 구성된 임원진과 정례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2010년 2분기 이후 열리지 못한 노사협의회가 최근 재개됐는데, 이달 말까지 8차례를 한꺼번에 갈음할 예정이다. 체육 행사비 인상이나 의료비 지원대상 및 금액 인상 등이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투쟁을 거치면서 노사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학습효과를 토대로 원활한 협상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 앞으로 해결하고 싶은 현안이 있다면.

“파업 이후 지점이 30개 이상 줄어들었다. 그리고 830여명의 명예퇴직자가 발생했다. 더군다나 지난해에는 어수선한 분위기 탓인지 공채도 없었다. 조합원들의 노동강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졌다. 노조는 고졸 사원을 중심으로 하반기 공채 인원을 늘리고, 조합원들에게 부여되는 목표가 합당한지 감시할 것이다. 또 오랜 투쟁으로 지친 조합원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싶다. 이를 위해 기존의 인원을 두 배로 늘려 매달 240여명의 조합원 가족을 초대하는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다른 지부와 함께 미혼인 조합원들을 이어 주는 미팅행사와 노사가 함께하는 체육대회 등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하고 싶은 사업이다.”

- 남은 임기에 대한 구상은.

“신문기사를 보니 최근 안철수 교수가 자신의 멘토인 고건 전 서울시장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고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열 사람이 필요하다고’고 했다. 지부도 금융노조에 파견한 간부 1명을 빼면 딱 10명의 상임간부로 구성돼 있다. 비상임을 포함하면 24명이다. 노조간부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결속력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낼 때 사측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활동의 초점을 과도한 성과주의 도입을 차단해 조합원들의 노동강도를 줄이는 데 맞춰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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