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곤 변호사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대법원 2011다20034 임금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사용자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되는 경우, 그 해고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사무실을 출입하고 쟁의 및 조합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수 밖에 없다.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 때문이다. 위 규정에 의하면 해고된 조합원이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설령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노동조합 사무실을 출입할 수 없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구제명령을 하더라도 사용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고, 중앙노동위원에서 사용자의 재심신청을 기각하더라도 사용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행정법원의 판결과 항소심의 판결, 상고심의 판결을 통해 비로소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점이 확정된다.

그러나 해고 조합원들의 권리구제는 이로써 보장되지 않는다. 해고 조합원들이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또는 행정소송과 동시에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별도로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노동위원회 구제명령 또는 행정소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별도의 민사소송을 2중으로 진행하는 것은 해고노동자에게 지나친 부담이다.

해고 조합원들이 임금소송을 제기할 때 쯤이면 해고된 지 3년을 족히 넘기게 된다. 사용자가 임금을 임의로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임금소송에서도 사용자는 임금의 항목 및 액수를 집요하게 다툰다. 해고 조합원들은 위 임금소송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용자가 단지 임금지급만 미루는 것이 아니다. (임금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해고일로부터 5년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용자는 그 사이 해고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임금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노동조합을 탈퇴하면 해고기간 임금을 곧바로 지급하겠다”며 노동조합 탈퇴와 임금소송 합의를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해고 조합원들은 해고를 당한지 수 년이 경과한 후에 임금을 지급받지만 그 사이에 해고자들 중 일부는 사용자에 회유돼 노조를 탈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와 같은 일은 장기투쟁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판결로 인해 위와 같은 사용자들의 수법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의 진행경과 및 판결의 내용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조합원들이 2002년도 임금협상 과정과 직장폐쇄 기간 중 사규문란과 사내질서 파괴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003년 2월4일자로 조합원 5명을 해고했다.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서울행정법원·서울고등법원·대법원은 모두 부당해고로 판단했다.(대법원의 부당해고 확정판결은 2008년 1월10일에 있었다.)

이에 해고 조합원들은 2010년 2월1일 해고기간 임금 중 미지급된 임금인 개근표창·장기근속자표창·명절선물비·회갑경조금·결혼경조금·가족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임금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는 ① 회사가 해고 조합원들에게 해고기간 동안 개근표창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② 위 각 임금들에 대해 3년의 소멸시효가 도과됐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됐다.

제1심과 항소심에서는 첫 번째 쟁점에 대해 ‘개근자표창은 1년 동안 개근을 하거나 지각 3회 이하로 정근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지급되는 것인데, 해고 조합원들이 해고기간 동안 계속하여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제1심과 항소심은 소멸시효가 도과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제1심은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일인 2008년 1월10일부터 소멸시효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였고, 항소심은 해고 조합원들이 행정소송에서 보조참가를 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중단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법원은 위 첫 번째 쟁점에 관해 단체협약에서 조합원이 1년간 개근할 경우 연말에 금1돈(정근하는 경우는 반돈)을 교부해 표창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개근표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들이 계속 근로했을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한편 위 두 번째 쟁점에 관해서는 “근로자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해고를 당한 경우, 근로자로서는 민사소송으로 해고의 무효확인 및 임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마련된 구 근로기준법(2007. 4. 11. 법률 제83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2조 내지 제86조(제85조 제5항 제외)의 행정상 구제절차를 이용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후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 또는 기각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에서 다투는 방법으로 임금청구권 등 부당노동행위로 침해된 권리의 회복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근로자가 위 관계법령에 따른 구제신청을 한 후 이에 관한 행정소송에서 그 권리관계를 다투는 것 역시 권리자가 재판상 그 권리를 주장해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님을 표명한 것으로서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재판상 청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판결의 의의
 
이 사건 판결로 인해 임금이 지급되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급되더라도 소액에 불과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회유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즉 사용자는 장기간 임금지급을 장기간 미룬 상태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됐으니 회사가 약속하는 일정액을 지급받고 임금소송을 취하하라”, “즉시 임금을 지급할테니 노동조합을 탈퇴하라” 등의 회유를 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한 회유가 있더라도 해고 조합원으로서는 흔들릴 필요가 없게 됐다. ‘임금의 범위’, ‘소멸시효의 중단사유’에 관한 법리적 판단 이외에도 이 사건 판결은 위와 같은 실천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사건 판결이 근로자들의 권리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장기간 엄청난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재무구조 또한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기타(guitar)를 만드는 회사가 소속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소속 노동자 전원을 정리해고하고, 법원에서는 그러한 경우에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리해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4조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규정이 돼 버린 이 야만의 시대에 이 사건 판결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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