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람 기자

“노동운동을 함께한 선배로, 평소 돈에 욕심이 없다는 말만 믿고서 골든브릿지증권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당시 했던 약속들이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을 겁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발언자는 평소 투쟁현장에서 듣기 힘든 단어를 반복적으로 꺼냈다.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이날 비판의 대상이 된 이상준 골든브릿지 금융그룹 회장을 자꾸만 "선배"라고 불렀다.

사연은 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사무금융연맹과 보험노련이 통합했고, 장 공동대표는 사무금융연맹의 일원으로 보험노련에서 홍보담당 상근간부로 일했던 이 회장과 안면을 텄다.

둘 사이는 가까웠다고 한다. 이후 2005년 장화식 공동대표가 운영위원으로 있던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상준 회장과 사업 청산 위기에 놓인 브릿지증권을 구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양측은 돈만 챙긴 채 자국으로 철수하려던 영국계 투기자본에 대항해 회사를 살리고, 이를 이어 갈 합당한 주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몇 개의 업체가 회사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인정하고 노조가 손을 들어준 곳은 이 회장이 대표가 된 골든브릿지 컨소시엄이었다. 이 회장은 특히 회사를 인수하면서 등기·사외이사를 노조 추천자로 선임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노사 공동경영 약정서’를 체결했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6년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사측은 지난해 8월 일부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노조가 법정 투쟁으로 맞서자 두 달 뒤에는 아무런 통보 없이 단협을 파기했다. 노조의 저항에 사측은 "향후 단협에 단협 개정을 위한 쟁의행위를 할 경우 해고한다는 조항을 추가하겠다"고 위협성 발언까지 했다.

이 회장은 이랜드·유성기업·KEC 등의 노사관계에 개입한 창조컨설팅을 앞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그를 노동운동의 선배로 생각하고, 2005년 김앤장에 맞섰던 여러 활동가들은 참담함에 빠졌다.

집회 말미에 장 공동대표는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 회장이 브릿지증권을 인수하며 했던 말이 장 공동대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는 데 필요한 돈은 얼마 안 되는데 다들 탐욕을 버리지 못해서 그 이상을 갖고 싶어 하죠. 그러나 돈은 담배연기나 모래처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생리입니다.”

물욕을 자제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일 것이다. 새 주인의 말 한마디에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을 했던 선배는 역시 달라”라고 했을 것이다. 이 회장은 그때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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