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낮 기온 22도, 봄볕 따사롭던 어느 봄날 저기 소녀들은 덕수궁 벚꽃길을 걸었다. 살랑 불어 봄바람에 꽃비 내리니 설레는 마음, 볕 볼 일 없어 뽀얗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눈부시게 뽀얗던 벚꽃을 똑 닮았다. '벚꽃엔딩'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며 사뿐 걸었다. 벗들과 나란히 졸업사진을 찍었다. 거기 대한문 앞 요란하던 북소리, 태평소 나팔소리. 매일같이 수문장 교대식이 엄숙했다. 바로 옆 초라한 분향소 천막 앞 요란하던 비명소리, 진압을, 연행을 명하던 경찰 지휘관의 무전소리. 매일같이 기자회견은 비장했다. 사지가 들려 호송차로 끌려가던 상주, 울먹이며 주저앉은 이,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 잡아 호소하던 사람 얼굴에도 화색은 돌았다. 하얗게 질렸거나 검붉게 타올랐다. 하얀색 국화 난리 통에 흩날렸고 경찰 구두에 짓밟혔다. 낮 기온 22도, 봄나들이 나선 소녀들이 지나칠 순 없어 가만 섰다. 하얀색 벚꽃 몇 송이와 선전물 손에 꼭 쥐고 그 모습 오래도록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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