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올해 1월 수협중앙회지부 10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안배영 위원장(45·사진)이다. 안 위원장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신천동 수협중앙회 3층 노조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처음 해 보는 노조활동이지만 어색하지가 않다”며 “과거 집행부 이상으로 적극성과 투쟁성을 보이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누구나 노조 대표자 될 수 있어야"
안 위원장은 96년 수협중앙회에 입사한 후 여신심사역과 여신관리부 소송업무를 주로 맡아 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조합원 중 하나였다.
그랬던 그에게 지난해 10월 의외의 제안이 들어왔다. 차기 노조 위원장으로 일해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2명의 동료가 각각 차기 위원장 출마를 계획하고 있었어요. 양측 다 경선보다는 단일화를 원했는데, 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납득할 만한 제3의 인물을 세우기로 합의한 거죠. 평소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해 왔는데, 그래서인지 기회가 주어진 것 같습니다.”
임원선거를 2개월여 앞두고 이뤄진 급작스런 제안이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노조활동은 곧 싸우는 일인데, 그런 일이라면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86~87년 민주화·노동자 투쟁의 한가운데서 대학시절을 보냈다”며 “매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조의 대표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안 위원장이 앞장선 것은 노조와 갖은 마찰을 빚은 강병순 전 감사위원장을 코너로 몰아붙인 일이다. 강 전 감사위원장이 연임의사를 밝히자 안 위원장은 삭발을 하고 본사 현관 점거 농성을 펼치는 등 투쟁수위를 끌어올렸다. 결국 강 전 감사위원장의 연임은 저지됐다.
2011년 임단협 협상도 지난달 말 집중교섭을 벌인 끝에 마무리했다. 쟁점이었던 호봉상한제 도입을 미루고, 식비인상과 창립 특별보너스 등 복지 증대를 이끌어 냈다.
"공적자금 빌미 노동력 착취 막을 것"
안 위원장은 "공적자금 투입을 빌미로 한 노동력 착취를 막는 것이 노조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라고 말했다. 수협중앙회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영악화로 약 1조1천500억 상당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 수협중앙회는 정부에 경영이행각서를 제출하고 매분기 매출·비용 등 각종 경영지표를 조정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피땀을 흘린 탓에 10년이 훌쩍 넘도록 분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한두 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지역 수협에 지원하는 공통비를 포함하면 결손금을 다 갚았다는 것이 노조의 판단입니다. 그런데도 사측은 여전히 경영이행각서를 핑계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임단협에서도 사측은 오랜 말버릇처럼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고 한다. 안 위원장은 “공적자금이 조합원들의 족쇄가 돼선 안 된다”며 “회사의 이익을 정의롭게 배분해 노동력이 착취당하는 일은 반드시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협중앙회 입지를 강화해 업무강도를 줄이는 것도 안 위원장이 구상하고 있는 밑그림 중 하나다.
“1962년 수산업 협동조합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수협중앙회입니다. 출자를 했다고 해서 지역 조합장 각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어요. 이종구 현 회장이 컨트롤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인사 개입은 물론 업무 간섭이나 무리한 요청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안 위원장에게 같은 시간 열린 수협중앙회 임시총회 결과가 전달됐다. 조합장들은 박규석 현 지도·경제대표의 연임에 반대했다. 노조가 ‘낙하산’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임광수 농림수산식품부 수산정책실장의 임명 가능성이 커졌다.
“천운이 있는 것 같아요.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싸울 일’들이 연달아 생기니 말이죠. 조합원들에게 행동을 통해 ‘이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구나’라는 걸 보여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