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대한문 앞 분향소. 설치하다가 짓밟혔다. 설치했다가 경찰에 의해 철거당했다. 국민 모두가 눈물로 기억하는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했었던 그 자리. 대한문 앞에 한 노동자를 위한 작고 초라한 분향소는 지금 이 나라에서 강제진압당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세상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쌍용차에서 강제로 해고된 36세의 이아무개씨는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신문은 이씨의 죽음을 이렇게 보도했다.

그는 95년 쌍용차에 입사해 부품품질팀에서 15년간 일했다. 2009년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 당시 77일 동안 파업에 참가했고, 끝까지 희망퇴직을 거부하다 정리해고됐다. 그는 지난 1월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하고서 크게 비관했다. 최근까지도 취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 다녔던 그는 이렇게 쌍용차 정리해고 뒤 22번째의 죽음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이 세상에서 떨어졌다. 그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고, 누구도 그를 잡아 주지 못했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 말 한마디, 죽은 몸뚱이로 쓰고 갔다. 태산 같은 분노를 남기고 갔다. 어디 그만이겠는가. 이 나라에서 그는 흔한 이름이다. 해고·실직은 노동자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미래다. 그러니 해고노동자·실직자는 노동자의 또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분노는 이 나라에서 언제든지 모든 노동자의 분노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연금생활자는 분노로 제 몸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세상을 끝까지 저주하며 죽은 몸뚱이로 반란을 선동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해고노동자는 분노에 지쳐 절망의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다 제 몸뚱이로 ‘이 세상은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다’고 쓰고 죽었다. 그런 그를 기리는 대한문 분향소는 짓밟히고 있다. 이 봄날에.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이 총선의 날에. 한 정리해고자의 죽음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2. 그는 정리해고자로 죽었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를 죽였다. 정리해고를 규정한 이 나라 노동법이, 그 법을 입법하고 판결했던 학자와 국회의원·판사가, 무엇보다도 그것을 막지 못했던 이 나라 노동운동이 그를 죽였다. 자본의 세상에서 작업장에는 노동자의 자유가 없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자유가 없는 노동자에게 권리를 이야기해 왔다. 고용과 근로조건을 쟁취해 주겠다고 외쳐 왔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이야기했던 권리는 정리해고로부터 노동자를 지켜 주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첫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고(제1항), 둘째 해고회피 노력과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대상자 선정이 있으면(제2항), 둘째에 관한 근로자대표와 협의하고서(제3항) 사용자가 정리해고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장래 경영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생산합리화조차도 인정된다. 해고회피 노력은 명예퇴직·희망퇴직 등으로 조치로 다한 것으로 인정되고, 해고대상자 선정은 근로자 중 누구를 선정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라서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될 수 없다.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는 앞서의 요건을 갖춰 정리해고하면 이 협의조항을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우리 법원은 판결해 왔다. 그러면 어째야 하나. 법원이 부당하게 정리해고법을 완화해서 해석해 왔다며, 그걸 막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입법해야 한다는 것인가.

3.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이 나라에서는. 어떻게 정리해고를 규제하겠다는 것일까. 이번 총선으로. 정리해고에 관한 규제, 새누리당의 총선공약에는 당연히 없다. 지금대로 사용자는 정리해고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쌍용차의 그는 다시 태어나도 분노를 안고 죽을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의 총선공약을 보자. 한국노총과 정책연대하고 야권연대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각종 노동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그런데 정리해고 규제는 찾을 수 없다.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쌍용차가 아닌 다른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정리해고되는 걸 피할 수 없다. 이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통합으로 연대로 통 크게 달리는 통합진보당을 보자. 총선공약으로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정당이라고 내세우는 진보신당도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했다.

따라서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이 나라 노동자는 지금까지처럼 사용자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될 것이냐에 관계없이 이 두 당이 압도적 다수로 의석을 차지할 것은 명확하다. 결국 이 나라 노동자는 정리해고의 오늘이 내일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쌍용자동차의 그의 죽음을 이 나라 노동자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를 정책으로 말하고 있는 진보정당이 내세운 정리해고 규제 공약은 어떤가. 진보신당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해고를 하지 않으면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로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공약으로 발표했다. 통합진보당은 ‘회피의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노사간 협의 및 동의절차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것으로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를 입법하겠다고 노동정책을 발표했다. 진보신당의 공약대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한다면, 과연 법원이 지금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다르게 해석할 것인가. 다르게 해석하든 말든 이 진보신당의 공약대로 입법되더라도 2009년 그는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돼야 했다. 2009년 당시 쌍용차 상태는 ‘해고를 하지 않으면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라고 사용자는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그 사용자의 주장을 사용자가 제출한 경영자료로서 판단할 것이다. 경영악화로 인한 사업 계속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정리해고를 허용하겠다는 법이므로 법대로 그는 정리해고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정책대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한다면 그게 사용자의 일방적 정리해고를 금지하는 법일까.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에 해당하든 아니든 앞으로 이 나라 노동자가 쌍용차의 그처럼 정리해고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회피의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노사 간 협의 및 동의절차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며 일방적 정리해고를 금지한다는 통합진보당의 노동정책이 그대로 입법된다고 해도 그렇다. 2009년 쌍용차에서 사용자의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노사간 협의 등이 인정되는 한 그 법에 따라 법원은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할 것이다. 해고 회피의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노사 간 협의 등을 거치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되고 일방적이지 않은 정리해고로서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총선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총선의 날에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나라 노동자는 오늘이나 총선 이후의 세상에서나 정리해고의 위협 아래에 놓여 있기 마찬가지다.

4. 정리해고는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근로계약을 이행하겠다고 하는데도, 노동자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도 사용자의 사정으로 일방적으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다. 그럼 사용자는 당연히 계약불이행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정리해고에 관해 법이 존재한다면 그 법은 정리해고 금지법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로 자본주의기업에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 해서 정리해고법을 입법했다.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도 있다." 이런 법리로 불가피한 경우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사용자가 책임을 면하고 정리해고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정리해고법은 어떠한 것이라도 사용자에게 정리해고의 자유를 허용하는 법일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의 폐해가 문제라면 정리해고 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정리해고 요건강화는 방법이 아니다. 요건강화는 정리해고 자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이는 책임을 면제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사용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근로계약을 종료시킨 것이니 사용자는 그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면책이라니. 왜 노동자는 면책이 없는데 사용자는 면책이란 말인가. 민법상 고용계약과는 달리 노동법은 근로자의 고용보호를 위한 법이고 여기서 사용자의 해고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박탈했다. 기업이 노동자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면책되는 법적제도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주식회사·유한회사라 해도 그것은 그 주인이라는 주주·사원이 기업의 책임으로부터 유한책임을 진다는 의미일 뿐이다. 기업 자체가 법적 책임으로부터 면책돼야 할 아무런 정당성도 없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는 정리해고 앞에서는 노동자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가 죽어도 되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노동자는 그 세상에서 살 수 없다.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도 있다는 논리는 노동자가 있어야 기업이 있다는 주장 앞에서 더 이상 정당할 수 없다. 지금 문제는 정리해고를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귀책사유로 인해 근로관계가 종료될 때 그에 따른 노동법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리해고에 관한 사용자의 자유를 박탈해야 확보할 수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는 그의 죽음으로 말했다. 정리해고가 자유인 세상에서 노동자는 살 수 없다. 정리해고는 자유여선 안 된다.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죽어야 하는 세상에선 정리해고의 자유는 살인의 자유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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