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87년 6월 항쟁 이후 완성돼 가던 민주주의가 MB정권이 들어선 후 유린당했습니다. 서민이 빈민이 되고, 기득권이 특권층이 되는 허망한 사회가 된 것이죠. 국회로 가게 된다면 서민도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문명순(50·사진) 금융경제연구소 이사는 지난달 20일 발표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23번에 이름을 올렸다. 당선도 가능한 순번이다. 문 후보는 80년대 남녀차별이 심했던 시절 여행원으로 살았고, 이후 여성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2008년에는 금융노조 역사상 최초의 선출직 여성 수석부위원장에 당선됐다.

문 후보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진출해 금융지주나 금융공공성·비정규직 등 은행원으로 살아오면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현실정치와 연계해 풀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문 후보를 만났다. 4·11 총선 노동계 출신 후보자 연쇄 인터뷰 마지막 순서였다.

-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가 된 후 어떻게 지냈나.

“민주통합당 지역구 출마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매일 유세장에 갔다. 주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자 평등노동본부장인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다니고 있다. 지난달 28일 출범한 MB·새누리심판 국민위원회 민생파탄심판 국민운동본부에서 박영선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이나 민생현장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여성 비례후보로서 여성 지역구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선거운동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이 비례대표 후보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정부심판론 같은 주요 이슈는 중앙당 차원에서 접근해야겠지만 이와 병행해 당의 비전을 보여 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비례대표 후보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금융노조가 배출한 김기준 후보는 민주통합당이 추진할 금융정책을, 나 같은 경우는 여성과 복지부문에 대한 기획을 설명하고 전파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비례대표 후보의 지명도가 낮다면 기존 현역 의원과 짝을 이뤄 이슈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새누리당처럼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정책이 휘둘리는 방식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 국회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우선 노조법 재개정과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고 싶다. 금융노조에 몸담으면서 고민했던 것들을 현재의 사회문제와 연계해 풀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 문제가 처음 대두되고 운동이 시작됐던 곳이 바로 은행권이다. 많이 개선됐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시각을 넓혀 보면 이 문제는 일·가정 양립과 임금차별·저출산 등 국가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사용자가 아닌 지주사 회장의 경영간섭이나 노동탄압 등이 은행권 노조의 고민이다. 제조업 대기업의 경영구조나 원·하청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수차례 재벌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지배구조 문제가 가장 노골화돼 있고 노조의 힘이 센 금융권에서 문제해결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 조세시스템 개혁을 공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자감세는 물론이고 많은 중산층의 근로소득세도 합리적으로 다시 점검해야 한다. 조세에 대한 철학이 달라져야 한다. 현행 과세 방식은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소득자들에게 무척 불공평하다. 이자소득이나 부동산거래로 수천만원의 소득을 올리려면 원금이나 부동산가격이 수십억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세금은 원금이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이자에 매겨진다. 사업자 역시 총매출에서 재료비·판매관리비·시설비 등을 제외한 순이익만 세금을 낸다. 근로소득자는 총매출에서 세금이 떼이는 경우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영위해야 한다. 기업으로 보면 재료비·유지비에 해당한다. 근로자는 총소득에서 의식주에 해당하는 필요경비 개념을 도입해 근로원가를 공제해야 한다. 그게 조세형평에 맞다. 임금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세수가 줄어들지 않나.

“조세구간을 넓히면 극복할 수 있다. 고소득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금융 지주사 회장의 경우 연봉을 10억원 이상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3억원 이상의 근로소득자는 모두 같은 세금을 낸다. 세율 역시 바로 아래 단계에 비해 겨우 3% 높다. 조세구간도 겨우 5단계로 구분돼 있다. 구간을 세분화하고 세율도 조정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인 조세정책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 여성 노동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80년 국민은행 신촌지점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원’이라는 직급을 따로 운영할 정도로 남녀차별이 심했다. 남자 동기의 월급이 12만원이었는데 여성은 8만원이었다. 진급도 어려웠다. 지점장은 꿈도 못 꿨다. 87년 6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국민은행에서 선배들과 ‘여성들의 동등한 권리를 찾기 위한 모임(여동회)’을 결성했다. 은행권 최초로 여성 조합원들이 임금차별을 이유로 당시 국민은행장을 고발했다. 89년 노조 직선제를 하면서 여성 부위원장 제도가 도입됐고, 92년에는 ‘여행원’ 제도가 폐지됐다. 이후 국민은행노조 여성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여성이 많은 은행권 비정규직의 복지수준을 정규직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 아동 보육시설과 청소년 정책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해마다 전국 240여개의 아동 보육시설에서 만 18세가 되는 1천여명이 길거리로 내보내진다. 손에는 300만원의 정착금을 쥔 채로….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아프다. 권양숙 여사가 이 일에 관심을 보였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만 18세는 사회에 혼자 내던져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국가가 폴리텍대학이나 기술대학 등을 통해 이들의 자립을 돕고 기숙사 같은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반대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한두 명의 국회의원만 주도적으로 나서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 후보 개인에 대한 얘기를 해 보자. 어린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사회적 의식이 강한 분이었다. 부득이하게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래서 식구들이 상경하게 된 것이다. 도시빈민으로 살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마포여중을 졸업하고 서울여상에 진학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후배들을 위한 금융실무 교과서를 공동으로 집필했던 것이 가장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동문회가 은행원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 책의 첫 인세를 서울여상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썼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93년 국민은행노조 여성정책실장을 맡아 교육을 담당했다. 당시 박백수 노조 위원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노조교육에서 노 전 대통령은 단골강사였다. 그분의 강의를 계속 들으면서 정치적인 의식이 생겼다. 노 전 대통령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정치가 밥 먹여 준다’였다. ‘난 은행원 시험도 떨어졌는데, 나보다 훌륭한 여러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성평등 중심의 노동운동에만 관심이 있었다. 지금처럼 현실정치에 뛰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을 아주 소박한 분이었다. 속초 콘도에서 숙소를 안내해 드렸더니 손사래를 치며 ‘아주 조그만 방’ 하나면 된다고 했다. 나중엔 ‘아주 조그만 비석 하나’ 남기라고 하셨다. 돌아가시면서 남긴 말씀을 전해 듣고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 당선된다면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92년 부평 대우자동차 공장 내 출장소에서 일했을 때다. 어버이날을 맞아 노동자들의 고향 송금업무를 도왔다. 한 노동자가 주머니에서 5만원을 꺼내더니 시골 농협으로 부쳐 달라고 했다. 수수료가 든다고 하니 원금에서 떼고 넣어 달라고 했다. 4만7천600원을 송금했다.

정작 돈이 많은 은행 VIP에게는 수수료가 면제된다. 명절이 되면 갈비세트를 선물로 들고 찾아간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다. 국회로 간다면 이런 사소한 불평등부터 바로잡을 생각이다. 그것이 금융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정치를 하고 싶다.”


문명순 민주통합당 후보는
서울여상 수석졸업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졸업(경제학학사)
서강대 경제대학원 졸업(경제학석사)
전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
전 한국노총 중앙위원, 여성위원회 위원
전 고등학교 교과서 집필위원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회 위원
현 참여성노동복지터 수다공방 이사
현 정치바로연구소 이사
현 금융경제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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