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 교선팀장

지난달 국제노동기구(ILO) 집행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가 포함된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를 채택했다. 2007년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침해를 국제노동기구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제소한 이래 지금까지 4차례 보고서가 발표됐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 역시 사내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침해 상황에 대한 국제노동기구의 심각한 우려와 강력한 권고를 표현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의 상황과 관련해 국제노동기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한 노조활동으로 인해 해고를 비롯한 피해를 입게 된 경우 복직을 포함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후 유사한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실효성 있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며, 노동기본권을 약화시키는 방편으로 ‘사내하도급’이 활용되지 않도록 적절한 기제를 개발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권고에 직접 언급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례를 보자. 국제노동기구는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복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측이 경비대와 용역깡패를 이용해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에 대해 정부가 즉각 독자적 수사를 진행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이뤄지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노동기구가 한국의 사내하도급이 사측이 노동기본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기제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지적한 점이다. 이런 시각에서 국제노동기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는 자(원청)와의 단체교섭이 항상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이러한 단체교섭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파견·용역·민간위탁·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모이면 ‘바지사장’인 용역·하청업체를 앞세워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소속업체를 폐업시키는 것이 ‘진짜 사장’ 원청의 대응 매뉴얼이 되다시피 했다. 2003년 사내하청노조를 만들자마자 원청에 의해 모든 조합원이 해고당한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7년여의 법적 다툼 끝에 2010년 3월 대법원에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해고자들은 현재까지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으로 밝혀진 사람들은 현대중공업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전히 취업을 할 수 없다. 2010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로 인정받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00여명이 넘게 해고당했다. 부당징계와 노조 탈퇴 강요로 인해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받고 있다.

총선을 맞아 각 정당이 앞다퉈 비정규직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정작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두드려 맞고,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심지어 살림살이마저 압류 당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법원마저 인정한 현대차의 불법파견 사용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고용노동부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쟁위행위를 하자마자 ‘불법파업 엄단’을 들고 나왔다. 정부는 현행 노조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이고, 원청을 상대로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원청은 근로계약상 고용주가 아니라도 노동자의 노무제공을 통해 이윤을 만들면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런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고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상식이 이번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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