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공인노무사

올해 3월12일 오전 8시5분께. 서울도시철도 5호선 왕십리역에서 사상사고가 발생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이후 사상사고가 드물었던 상황에서 서울도시철도공사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도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경위를 확인한 결과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철도를 운전하는 기관사가 동료 기관사가 운전하는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도대체 왜 기관사가 선로에서 열차에 치이게 된 것일까. 순직한 기관사는 전날부터 운행을 시작해 당일 아침 열차를 교대하고 퇴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왜? 원인은 ‘공황장애’였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어두운 지하터널에서 밝음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조건에서 장시간 운전을 한다. 이 과정에서 순간적인 혼란에 빠지는 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혼자서 운전업무를 수행하는 특성상 민원처리 및 장애조치와 운전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몸이 아파 병가를 신청하면 동료에게 부담이 되거나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이를 꺼린다. 교번근무의 특성상 날마다 근무시간이 다른 불규칙한 운전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지하철 5호선의 경우 지상구간 없이 지하터널만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다른 호선과 비교할 때 곡선구간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도시철도에서는 2003년부터 공황장애 등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됐다. 그리고 2007년 가톨릭대 성모병원이 실시한 임시건강진단 결과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7배가 높은 것으로 평가될 정도로 기관사의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관사의 작업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도리어 2009년부터 수동운전에 대한 결과가 근무평가에 반영되면서 기관사들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극심해졌다. 이른바 '퇴출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5678서비스단이 운영됐고, 직무재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도시철도 노동자에 대한 현장통제, 복수노조를 통한 노동탄압이 다각도로 이뤄졌다. 과거에 비해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기관사들의 운전업무에 따른 직무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환경·노동조건 개선은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결국 한 기관사가 자신이 근무했던 선로에서 열차에 치여 순직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순직한 기관사는 95년 도시철도 입사해 다른 직종에서 근무를 하다 2006년 승무분야로 전직해 기관사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부터 운전업무를 수행하면서 ‘머리가 어지럽다’, ‘운전하면서 토할 것 같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한방에서 ‘기음양허증’으로 분류된 상병으로, 다름 아닌 ‘공황장애’였다. 이 기관사는 한동안 운전업무가 어려워 병가를 사용한 후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올해 1월을 경과하면서 운전업무에 대한 직무스트레스가 다시 악화됐고 2월 중순께 다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더 이상 운전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직종 간 전직신청을 했으나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계속 운전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유족은 절규했다. “전직신청만 받아들여졌어도….”

좁은 공간에서 운전하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승용차조차 운전하기 싫어 팔아 버렸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먹고살기 위해 열차운전석에 앉아 어두운 지하구간을 운행하면서 감내했던 그의 스트레스가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끔찍한 것은 동료에게 운전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호소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말을 들었던 동료들 또한 들었던 말을 다른 동료들에게 속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자신의 일터에서 노동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문제점을 동료에게조차 마음 놓고 털어놓지 못하도록 옭아맨 현장통제와 각종 성과주의 시스템이 기관사들의 작업환경과 맞물려 무서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앞으로 더 이상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시철도의 작업환경·노동조건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한 노동자의 순직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설정됐다면 지금 당장 개선돼야 한다. 노동자들이 아프면 쉴 수 있고,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도시철도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것이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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