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국회의원은 개인이 결단해서 하는 게 아니라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원들이 후보를 내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런 게 바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아닐까요."

4·11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 준 산별노조는 보건의료노조다. 노조는 이번 총선에서 조직적으로 비례후보를 출마시키고 1개월 동안 조합원 4천500명을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가입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조합원 4만여명 가운데 10% 이상을 단숨에 가입시킨 것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나순자(47·사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11번) 후보는 "보건의료노조는 진보정치에서 노동자 중심성을 세우는 것과 관련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 보건의료노조에서 조직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출마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노조활동을 하면서 보니 모든 법과 제도·예산이 국회에서 결정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나 다른 의원들을 통해서 작업을 했는데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하면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대리정치 하지 말고 직접정치 한번 해 보자고 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가장 먼저 산별노조를 건설했고, 산별파업도 했다. 3년 동안 전략 의제로 무상의료와 보호자 없는 병원, 공공의료 강화, 병원 인력법을 이슈화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제들을 실현하려면 국회에서 누군가가 직접 설득하고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짧은 기간에 통합진보당 당원 가입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깜짝 놀랐다. 실제 당원 가입운동을 벌인 것은 설 연휴 끝나고 1개월 남짓이다. 조합원들이 지부 간부들에 대한 신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현장조직이 약화됐다고 고민했는데, 지부 간부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현장 조합원과 신뢰를 쌓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둘째는 조합원들이 너무나 절박했다. 조합원들은 3교대를 한다. 밤근무를 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인력까지 적다. 경력만 쌓고 그만두겠다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인력법을 만들어서 우리의 상황을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진 것 같다. 밤에 현장을 다니면서 만난 조합원들은 다른 것은 필요없고 10분이라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당원 가입운동을 하는 동안 나순자 후보와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지역본부장들은 '밤에 피는 장미'로 불렸다. 낮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조합원들과 한 마디라도 나누기 위해서는 자정이 넘은 시간부터 현장을 순회해야 했다. 새벽 4~5시까지 전국을 돌아다녔다. 오전에 잠깐 수면, 낮에는 통상근무와 간담회, 밤에는 현장을 순회하는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다. 나 후보는 "하면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 대대적인 당원 가입 성과에 비하면 비례후보 경선 결과가 다소 아쉬울 것 같은데.

"통합진보당 통합 과정에서 노동 중심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대거 입당하면서 노동자 중심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모범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도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고 조직 내 모든 사람들이 실망했다. 찬찬히 뜯어보니 짧은 시간에 급하게 가입시킨 게 문제였다. 가입만 시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상당수 조합원의 당권이 누락된 것이다. 또 조합원들이 이해 못하는 것은 후보 15명에 대해 투표를 해서 4위를 했는데 왜 11번에 배정됐냐는 것이다. 우리는 전략공천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조합원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총선이 끝나면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 관련해 진성당원제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 후보는 "조합원들이 힘든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런 게 바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것도 절감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여성 조합원들이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에 가입하고 후보를 냈고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비록 뒷번호이기는 하지만 조합원 교육을 하면서 결의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투표하고 지인을 10명씩 조직하겠다고요."

나 후보가 예상보다 뒷번호에 배정되면서 조합원들에게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지지율이 올라야 나 후보의 당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후보는 "보건의료노조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고 노동자 중심성을 강화하는 모델을 만들었다"며 "다른 산별연맹에도 전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89년 이화의료원 동대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노조활동을 하게 됐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노조가 만들어졌다. 처음에 간호사들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병원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을까. 간호사와 의사(인턴) 간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간호사를 두둔해야 할 간호부가 인턴을 두둔했다. 간호사들은 분개했다. 우리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간호부가 아니라 노조라고 생각했다. 수간호사들부터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임금을 조금 주려고 6~8개월을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었다. 비정규직은 생리휴가와 월차도 없었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위원장이 된 첫해에 비정규직을 3개월 이상 쓰지 못하도록 단체협약을 만들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비정규직도 생리휴가와 월차휴가를 쓸 수 있게 했다."

- 20여년 동안 노조간부로 활동했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단위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6개월 동안 96~97년 파업을 조직했다. 당시 병원들이 정리해고와 파견법에 맞서 진짜 열심히 파업했다. 여성 조합원들이 하면 더 열심히 하지 않나. 하루는 종묘공원에서 집회하고 명동성당까지 행진하면서 최루탄을 많이 맞았다. 그러자 다음날 조합원들이 치약과 마스크를 스스로 준비해 왔다. 그때 참 감동했다. 노동자들의 힘을 느꼈다.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니까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나. 2004년에는 산별노조 사무처장을 하면서 산별파업을 했다. 전국적으로 1만여명이 상경했다. 그때 우리만 근로기준법상 무급인 생리휴가를 유급으로 따냈다. 그런 투쟁을 통해 노동자와 산별노조의 힘을 확인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노조활동을 하는 긍지와 원동력이 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출신 후보자로서 내세울 만한 대표적인 공약은 무엇인가.

"병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환자나 가족들이 뭐가 힘든지 가장 잘 안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문지를 돌려보면 불만은 세 가지다. 병원비가 비싸다, 왜 간병까지 가족들이 책임져야 하냐, 너무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불친절한 것은 인력이 부족해서다. 무상의료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무상의료는 얼마나 대중적으로 의제화되느냐가 중요하다. 2005년부터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민주노총·시민단체와 함께 전국적으로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벌였다. 지금 암에 대한 본인부담액은 5%밖에 안 된다. 무엇보다 인력을 충원해서 병원이 간병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인력법을 만들어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도 잘하는 병원, 일자리도 창출하고 조합원도 인간답게 일하는 노동조건을 만들겠다."

나 후보는 "민주노총에 있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민주노총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니까 당에서도 별로 신경을 안 쓴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어느 당이든지 노동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 중심성을 세우려면 우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앞으로도 대대적인 가입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적으로 조합원 교육을 하면서 계급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나 후보는 "8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소야대와 진보정당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8월 민주노총의 '1-10-100'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80만 노동자들이 계급투표를 해서 승리를 안아야 합니다. 이번 투표는 미래에 대한 투표입니다."

나순자 통합진보당 후보는
이대목동병원 간호사
이화여대 간호학과 졸업
보건의료노조 5대 위원장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1·2대 본부장
이화의료원노조 3·4·5대 위원장, 5·6대 지부장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국제공공노련(PSI) 동아시아지역 자문회 공동의장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초대 공동대표
건강연대 공동대표
무상의료 국민연대 초대 공동대표
보건의료노조 상근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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