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희 후보

"노동과 정치가 다르다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노동이 곧 정치고, 정치가 바뀌어야 노동도 바뀝니다."

이영희(50·사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는 노동계에서도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 중 한 명이다. 현재 세 번째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을 맡고 있고, 6년 동안 무급으로 정치활동을 했다. 그는 "노동이 곧 정치"라며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은 노동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 후보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장기투쟁 사업장을 전담하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 총선에 출마한 이유는 무엇인가.

"97년 국민승리21을 만들 때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96년 말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고 민주노총이 역사상 처음으로 36일 동안 총파업을 벌였지만 97년 3월 노동법이 개악됐다. 국회에 노동자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일이 있었겠나. 파업투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국회에서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진보정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 민주노총의 '1-10-100 운동'도 가능하다."

- 81년 경북월성원자력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제관공 조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당 7천500원을 받으며 일했다. 건설현장은 예나 지금이나 화장실도 없고 밥 먹을 곳, 쉴 곳도 없었다. 제관공을 하다 당시 한국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도장공으로 일했다. 81년부터 83년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와 85년 10월 제대 후 6개월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86년 4월2일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이 후보는 당시 플랜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상황을 떠올리며 리핵터빌딩·터빈·트랜스포머·샌딩 머신 등 온갖 전문용어를 쏟아냈다.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출신인데. 어떤 계기로 노조활동을 시작했나.

"당시 현대차에는 생산직과 대졸사원인 일반직 중간에 사무기술직이 있었다. 고졸인데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국립전북기계공고를 나와 정밀설계 2급·기계제도 2급 자격증이 있어서 설계일을 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고2 때 12·12 사태가 터졌다. 기숙사에서 데모를 했는데 우리가 요구한 것은 흰 고무신을 신게 해 달라, 스포츠 머리를 하게 해 달라, 수학여행을 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머리 단속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차에 들어가니 두발 단속을 하는 것이었다. 회사 경비아저씨가 바리캉을 들고 회사 정문에서 단속을 했다. 86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당시 일요일 특근을 하고 있는데 공설운동장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몰려갔다. 그때 요구했던 것이 두발 자유화, 임금차별 금지, 상여금 지급 등급 폐지였다. 회사 관리자·조반장들이 군대처럼 조인트를 까는 것이 싫었다. 그런 것들을 없애자고 데모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6년 7월 노조가 생겼는데 당시 회사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을 중심으로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어용노조 해산을 요구하며 중식거부 투쟁을 했는데 당시 노조 소의원 완장을 차고 조합원들을 식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 첫 임무였다.(웃음)"

- 노동운동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4대 집행부 때인 90년에 민주대의원회를 만들었다. 대의원에 당선되면 회사측에서 포섭해서 회사측 대의원으로 만들었다. 그렇지 않은 대의원들을 규합해 민주대의원회를 만들었고 초대 의장을 맡았다. 대의원 200여명 중 100명이 민주대의원회 소속이었다.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만든 것도 그때다. 회사에 사내유보금이 엄청났는데 노동자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성과금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직장이 폐쇄되고 전국에서 전투경찰 수만 명이 울산으로 집결했다. 연포만 작전이었다. 노동자들이 150만평 공장을 점령했는데 경찰에서는 매일 공중전을 벌였다. 날씨는 춥고 배고팠다. 91년 12월 공장을 점거했고, 이듬해 1월 임원들이 끌려간 후 당시 기획실장이었던 내가 장외투쟁을 주도했다."

이 후보는 이때부터 수배생활을 시작했다. 수배생활 때 연인으로 발전한 사람이 부인 하현숙 현 울산광역시 시의원이다. 하 의원은 수배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의 연락책을 맡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 후보 뒷바라지를 했다.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고 이 후보는 다른 수배자들과 서울 기독교인권회관에서 18일 동안 단식농성을 했다. 문민정부에 수배된 노동자들의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이 후보는 1년6개월의 수배생활을 마치고 93년 8월 현대차에 복직했다.

- 당선되면 장기투쟁사업장을 전담하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위원이 되겠다고 공약했는데.

"장기투쟁 사업장을 해결하는 속도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장기투쟁 1천500일을 넘긴다는 것은 야만적인 국가를 상징한다.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복지사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25년 동안 함께 운동한 동지다. 박 위원장에게도 당선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라고 했다. 그래야 금속노조 재정도 안정되고 지도력도 생기고 운동도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총파업도 할 수 없다."

- 현대차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노동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규직화해야 한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세 가지다.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 격차가 심하고, 단체협약이 없다. 조합원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노조 조합원이 아니면 협약이 없고 임금과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 정규직 단협의 효력을 확장하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법은 최저선이다. 법보다 우선 단협을 공유하는 게 운동의 핵심이다. 1사1노조로 단협을 적용하면 된다. 후생복지나 산업안전부터 합치면 된다. 내가 현대차에 근무할 때도 현대정공이나 현대종합목재에서 넘어온 노동자들의 임금이 적었지만 조합원이 되면서 동일한 노동조건이 됐다. 투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랑스도 노조 조직률이 10%대지만 협약 적용률은 70~80%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직률과 협약 적용률이 같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투쟁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민주노총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조직의 조직형태는 대부분 산별노조다. 내용을 채우는 것은 협약의 효력 확장이다. 협약의 효력 확장을 야권의 집권전략으로 잡아야 한다."

- 민주노총 내부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투표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으로서 입장은 무엇인가.

"지지율 3%를 얻지 못하면 사표가 된다. 2004년 여소야대였는데 왜 국가보안법과 사학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나. 강력한 진보정당 원내교섭단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하고 민주통합당만 과반이 되면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헌정 사상 진보정당이 첫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비정규직·최저임금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사표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진보대통합은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

- 이 후보는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새로운 노동중심 정당 창당론'보다는 '기존 진보정당 개조론'을 주장하고 있다. 기존 진보정당을 노동중심으로 개조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노동중심성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노동이 곧 정치다. 정치에서 지고 타임오프가 해결되나. 정치를 바꾸지 않고는 노동이 안 된다. 정치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현장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주류 노동운동이 현장을 지키는 사이 학생운동·지역운동 세력이 당에 대거 유입됐다. 노동 인적네트워크가 없는데 어떻게 노동중심성이 유지되겠나. 노조에 교선·대협 담당자는 수십 명 있지만 정치담당자는 없다. 민주노총에도 정치위원장이 1명, 정치국장이 1명이다. 노조에도 정치국을 신설해야 한다. 정치가 곧 노동이라는 인식 가져야 한다. 정치세력화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산별노조로 현장권력을, 진보정당으로 정치권력을, NGO 활동으로 소비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8번인 이 후보가 당선 안정권에 들려면 당의 지지율이 좀 더 올라가야 한다. 이 후보는 "투표를 하지 않으면 권리를 지킬 수 없다"며 "투표소에서 오답만 선택하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영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현대자동차노조 부위원장
현총련(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의장
민주노총 초대 부위원장
국민승리21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민주노동당 초대 최고위원(2선)
18대 총선 울산북구 민주노동당 후보
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3선)
현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
현 울산교육문화생협 이사
현 연암꾸러기 지역아동센터 고문
현 국립전북기계공고 총동문회 부회장
현 양정작은도서관 달팽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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