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법률원에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대개는 법이 정한 절차인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하기 위한 경우입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회사에서 쫓겨난 억울함이 심정적으로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노조활동 과정에서 집단적인 해고를 당한 경우가 아닌, 개인적인 사유로 혼자만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 억울함이 누적돼 마음의 병을 앓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소송을 쫓아다니며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서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승소가능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재판을 끝까지 하자고 합니다.

문제는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헌법 및 근로기준법 등에 의해 부당한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지만, 법원이 인정하는 ‘부당해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국은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법원은 전보와 같은 인사이동·징계·면직 등 사용자의 인사권 행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인사재량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용자가 인사권을 행사함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 요건과 실체적 정당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인사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부당해고(또는 해고무효확인)라고 판결합니다. 이와 같은 기준이 일응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사권 행사가 정당한지 부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결국 판단자(판사)의 마음에 상당부분 달렸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필자가 담당한 해고사건 중에 1심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됐다가 2심(항소심)에서 1심을 취소하고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난 경우가 있습니다. 해당 사건의 노동자는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작은 사업장의 경리담당이었는데, 연차수당을 안 주려는 사용자와의 갈등 과정에서 업무부적격자라고 전보됐다가 해고된 사람이었습니다. 1심에서는 그 노동자가 연차수당을 주장하거나 노동부에 진정을 한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이기에 이를 이유로 전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2심에서는 경리 및 관리담당이어서 사용자와 충돌하는 것 자체가 해당 업무에 부적절하기에 전보는 정당하고 이에 불응해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노동자는 1심에서 승소한 후 당연히 2심에서도 승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에 패소 후 실망은 대단해서 필자에게 다소 원망하는 말을 했지만 그 억울한 심정을 알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입 변호사인 필자에겐 그 사건은 충격이었습니다.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이야기하면 법원은 어떻게든 알아준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판단자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은 것이고 재판 결과는 승패를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건 중에 30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사직서’를 내지 않고 버티다 ‘근무성적 극히 불량’ 및 ‘업무실적 극히 불량’이라는 사유로 직권면직을 당한 노동자로부터 의뢰받은 면직무효확인 소송이 있습니다. 해당 노동자는 1년간 전보 3회에 이어 대기발령·감봉·면직을 당하고 결국은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이었는데 회사가 허위사실을 만들어 자신을 탄압했다며 지난 3년 동안의 인사조치 대부분에 대해 소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회사 소재지가 관할법원인 탓에 그 소송들은 모두 같은 법원에서 1심이 진행됐고 모두 패소했습니다. 패소가 누적될수록 억울함은 더욱 커지고 그 노동자는 가족과 상의도 없이 소송을 계속하면서 오늘도 재판기일을 기다립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제가 만나는 해고 노동자들이 연상됐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에게 그 석궁이 생각나지 않도록 억울함을 들어주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재판이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의문이 들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노동자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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