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낮게 드리워진 새벽 비좁은 골목길. 그 어둠과 비좁음을 뚫고 지팡이를 짚으며 한 발씩 내디뎌 오는 할머니 한 분. 만나면 "밥은 먹었어" 하고 밥줄부터 챙겼던 전태일 열사,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1929~2011년) 어머니가 다큐멘터리 <어머니>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다큐는 어머니가 생전에 살았던 서울 종로구 창신동 그 비좁은 골목, 어둠을 첫 장면으로 담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비좁지도 어둡지 않다.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려 했던 투사의 모습도 담지 않았다.

코 골며 입 벌린 채 잠을 자는, 이불 깔고 고스톱을 치는, 힘이 없어 손톱조차 혼자 깎지 못하는 그냥 할머니의 소소한 일상…. 우리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를 담았다. 이소선 어머니는 그 일상에서 배려와 사랑의 향기를 피워 냈다.

태준식 감독은 "작품 전체 콘셉트를 두고 제작진끼리 늘 토론했던 것이 이소선의 '신화'와 '일상'을 어떻게 다루고 접목시킬까였다"며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신화'라는 거대한 성의 한 층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그 근간을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상에 당당했고, 일상에서 따뜻했던…

 
다큐 속 어머니는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었다. 늘 누군가가 옆에 팔짱을 끼고 함께 나아갔다. 어머니는 쉽게 팔을 내어줬고, 또 끌어안아 줬다. 이 작품은 세상에는 당당했지만 일상에서는 따뜻했던, 그러나 늙고 작아져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2009년 11월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신 2011년 9월까지의 모습 그리고 이후 가족들의 삶을 담았다.

감독 태준식은 잔심부름을 하고, 손톱을 깎아 드리고, 고스톱을 함께 치면서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처음에는 태 감독을 낯설게 대하던 어머니도 나중에는 "왜 그 총각 안 와"(그 후에야 총각이 아닌 걸 아셨다)라며 그를 찾았다. 나중에는 "더 놀다가라"며 그를 잡았다. 태 감독은 그렇게 어머니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의 일상, 그 온기와 향기를 2년간 담았다. 태어날 때 너무 작아 아버지가 1주일을 고민한 끝에 ‘작은 선녀’라고 붙여 준 이소선 어머니의 이름 유래도 이 작품에서 처음 일반에게 공개됐다.

태 감독은 애초부터 40여년간 치열하게 살아왔던, 어머니의 투사로서의 모습을 그리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일대기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의 카메라로만 현재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그 일상의 모습을 통해 어머니의 삶 전체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씨는 어머니만큼 늙어 버린 나이에도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어머니 옆을 지켰다. 오랜만에 형 전태일 열사의 묘역을 찾은 태삼씨가 이소선 어머니와 티격태격하며 묘지 주변의 풀을 뜯던 모습은 인상적이다. 다큐 초반 쓰러진 어머니 때문에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힌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노동자·전태일과 뗄 수 없었던 삶

그럼에도 어머니의 삶은 노동운동, 전태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어머니가 일상 속에서 만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노동자·전태일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에 나오는 네 명의 주요 출연진 중 이소선 어머니와 아들 전태삼 외 두 명은 2인 연극 <엄마, 안녕>에서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 역할을 했던 부부 흥승이·백대현씨다. 감독은 이 부부가 연극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연극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70년대 전태일과 이소선 어머니의 삶을 조명한다. 연극 <엄마, 안녕>은 대만의 대표적인 저항예술가 왕모림씨가 연출한 작품이다. 전태일 열사 분신 당시 오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몸짓으로 담아낸 '퍼포먼스 아트' 형식의 실험극이다.

작품 중간중간 삽입된 어머니의 옛 사진을 통해 젊은 시절 어머니의 모습과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어머니의 사진 속에는 말 그대로의 70년대에 '어린 여공'들이 함께 살고 투쟁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작품 속에서 태준식 감독이 말했다. "어머니한테 의지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어머니는 답했다. "나한테 의지하는 것은 바보야. 나는 여사라는 말도, 태일이를 열사라고 부르는 말도 싫어. 나는 노동자의 어머니고, 태일이는 노동자였어."

어머니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았다. 자신을 낮추면서 세상을 품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나를 낮출 때 세상이 바로 보인다"는 게 어머니의 신조였다.

다만 “돈 있다고, 힘 있다고, 사람을 깔보는,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날 때는 다 똑같았는데, 어따 대고 무시해”라고 목소리를 높여 가며 어김없이 맞섰다.

유일한, 유일했던 … 어머니

제작진은 작품을 만든 후 이소선 어머니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력서 별명란에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적을 수 있는, 지위고하·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어머니'라고 불린, 노동절 행사에서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을 목소리 하나로 위로했던, 전태일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아 낸 어쩌면 그에게 빚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1929년 대구 달성에서 태어난 이소선 어머니는 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했던 아들 전태일이 남긴 "저희 뜻을 이어가 주세요"라는 유언 한 마디를 지키고자 40년간을 노동자를 위해 살았다. 아들의 뜻에 따라 우리나라 첫 민주노조로 불리는 청계피복노조를 설립했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하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걱정했다. 또 “노동자가 하나 돼야 해. 함께 싸워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해. 비정규직을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잖아”라는 마지막 말은 유언처럼 남겨졌다.

다큐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머니의 행동, 언행 하나하나에서 어머니가 왜 "스스로 빛을 내고 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꽃과 같은 존재"(태준식 감독)였는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큐 <어머니>는 지난해 11월 열린 광주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인 후 같은해 강릉인권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됐다. 태준식 감독은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해 <필승 ver2.0 연영석>(2007), <샘터분식>(2008), <당신과 나의 전쟁>(2010) 등의 작품을 만든 노동운동 다큐 전문가다. <어머니>는 개인과 단체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제작한 다큐로도 유명하다.

다큐는 다음달 5일 인디플러스·대구 동성아트홀·CGV 무리꼴라쥬 상영관 등 전국 13개 극장에서 개봉된다. 상영시간은 102분이다. 배급 문의는 (주)인디스토리(indiestory.com)로 하면 된다.


[상자 인터뷰] 다큐 <어머니> 태준식 감독

“어머니는 꽃과 같았던 분 … 그 향기 전해졌으면”

▲ 다큐 <어머니> 태준식 감독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감독 태준식(41·사진)씨는 지난 23일 "어머니는 스스로 빛을 내고 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꽃과 같았던 분"이라며 "어머니가 세상에 남기고 간 향기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 감독은 이날 오후 서울 한 극장에서 열린 <어머니> 시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머니가 처음 쓰러지셨을 때는 사나흘 카메라도 들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며 "그래도 어머니를 기억해야 한다, 이 작품이 그런 계기가 돼야 한다는 심정으로 편집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소선의 '신화'를 그리기보다는 '일상'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했다"며 "작품에 삽입된 연극 <엄마, 안녕>이 전태일과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일상이 보여 주지 못하는 일부분을 채웠다"고 말했다.

- 작품 내용 중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전태일 40주기 때 열사 묘역을 중심에 두고 여자·남자, 젊고 나이 든 사람 등 수많은 이가 도시락을 먹던 모습을 어머니의 등 뒤에서 찍은 장면이다. 의도적으로 길게 넣었다. 그 장면이 어머니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또 어머니가 힘이 없어 손톱을 못 깎으실 때 제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깎아 드린 장면이 있다(내려놓은 카메라에는 아들 태삼씨가 부엌에서 밥을 짓는 장면이 잡혔다). 우연찮게 찍혔는데, 사실 어머니가 (다른 곳에서는 당당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고 의지를 많이 하셨다. 그 장면이 그런 모습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 작품에서 연극 <엄마, 안녕>과 연극 출연진의 비중이 크다.

"어머니의 과거 모습을 연극을 만드는 과정과 연극 속에서 보여 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셨다(어머니는 생전에 "태일이가 분신 당일 아침과 분신 직후 이별을 고하며 자신의 뜻을 이어 달라 부탁했다, 그것이 내가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한 바 있다). 어머니의 삶 자체도 대단했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삶의 원형을 살펴보고 드러내고 싶었다. 분신 당일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이고, 연극을 통해 보여 주고 싶었다."

- 다큐 <어머니>가 어떤 작품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라나.

"어머니를 기억해야 한다. 평전도 나오고 극영화도 만들고 방송 다큐도 나와야 한다. 제가 그 첫발을 뗀 것뿐이다. 슬프지는 않지만 우리는 돌아보면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편안한 다큐로 다가갔으면 한다. 어머니는 스스로 빛을 내고 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꽃과 같았던 분이다. 어머니가 세상에 남기고 간 향기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소선과 전태일을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상자기사] 공지영 “이소선 어머니 평전 쓰겠다, 꼭”

소설가 공지영씨는 지난 23일 다큐멘터리 <어머니>를 본 후 "언젠가 때가 되면 이소선 어머니의 평전을 제 손으로 꼭 쓰고 싶다"고 말했다. 공씨는 이날 <어머니> 시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소설가가 되기 전 이소선 어머니 평전을 쓰려고 자료를 모았고, 어머니를 뵌 적도 있지만 결국 쓰지는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자료를 모을 때 여자가 홀대받던 경상도에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배움도 없이 이렇게 지혜로우면서도 담대하게 사실 수 있었는지,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전태일과는 또 다른 그 위대함을 글로 꼭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첫발을 떼어 주신 다큐 <어머니> 제작진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도 다큐 <어머니>를 감상한 후 "이렇게 많은 생각과 느낌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94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는 등 생전 이소선 어머니와 인연이 깊었다.

하 소장은 "어머니는 90년 중반까지만 해도 경찰에 연행되거나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조사받았던 횟수만 250회(옥고는 4번)가 넘었고 그 이후로는 통계조차 내지 못했다"며 "어머니가 젊었을 때부터 했던 수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이번 작품처럼 기록으로 남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는 늘 저를 만나면 여전히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으셨다"며 "하늘에서 다시 뵐 때, 그 질문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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