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정기훈 기자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진통을 겪고 있다. 선거방침을 정하는 대의원대회가 두 차례 연속 무산됐다. 특정정당 비례대표에 사실상 표를 몰아주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투표제' 방침과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참여정부 세력에 어떻게 노동자의 표를 던질 수 있냐"는 의견과 "노동자 정치세력의 외연을 확대하고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유시민(53·사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있다. 그는 '참여정부 부채승계론'을 내세우며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노동자에게도,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게도 별로 인기가 없다. 유 공동대표 역시 "노동자와 만나면 어색하다"고 했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참여정부 때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미안하다는 말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노동진영과 손을 잡고 싶다고 했다. “어색해도 피차 양해하자”며 “세월 가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겠냐”는 말도 했다. 과연 그럴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유 대표를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사실 어떤 면에서 너무 늦었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일렀다. 인터뷰를 하는 날 오전 야권단일후보 경선 결과가 발표됐다. 유 대표는 "진보정당의 수도권 의석 확보로 새로운 정치국면이 열릴 것"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 서울 관악을 야권단일후보였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여론조작 논란으로 불명예 사퇴했다. 총선을 앞두고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국면이다.

- 왜 정치인이 됐나.

"정치에 입문한 게 10년 전이다. 2002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의 세계로 들어왔다. 정치를 하게 된 것은 정책이나 이념, 비전 때문이 아니었다. 정당이 너무 엉망이라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민주당이 국민경선으로 노무현 대선후보를 뽑아 놓고도 다른 후보를 세워야 한다는 둥 오락가락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 정치를 시작했다."

- 지난 10년간 종잡기 어려운 정치행보를 보였는데.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많았다. 정치에 발을 디디면서 너무 쉽게 국회의원이 됐고, 재선의원이 됐다. 정치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다수집권당의 최고위원이 됐다. 그리고 장관이 됐다. 5년 동안 해마다 사고가 일어난 셈이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었고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참여정부 A/S 위해 통합진보당 참여"

- 민주노동당·새진보통합연대와 손을 잡게 된 이유는.

"참여정부에 대한 A/S(하자보수)다.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 때문에 나에게도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참여정부가 잘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한미FTA·제주 해군기지까지 마음의 짐이 너무 많다. 노 대통령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하자보수를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혼자 해 보려고 국민참여당을 만들었는데, 실력부족으로 잘 안 되더라. 참여정부의 빚을 갚아 나가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한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번 야권연대 단일후보 경선에서 가능성이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를 만들면 법안을 낼 때 다른 당의 힘을 안 빌려도 된다. 노조법 재개정이라든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같은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협상해서 하나씩 해 나간다면 정말 보람을 느끼지 않겠는가. 힘을 합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기에는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이 낮은 것 같다.

"지지율은 점점 올라갈 것이다. 있던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었다. 처음이니 어색한 것이다. 총선을 치르면서 국민들에게 통합진보당을 각인시킬 수 있다. 야권연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인지도가 오르고 호감도 생길 것이라고 본다. 3주일이면 충분하다."

“진보와 보수 이전에 옳고 그름이 있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 결과를 놓고 특정세력의 독식구조라는 비판이 높다.

"잘 모르겠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만든 민주노동당과 같다. 국민참여당이 합류했지만 숫자가 적은 편이다. 나는 민주노총이 기초가 된 지금의 당을 공부하는 중에 있다. 아직까지 당의 운영이나 규칙에 대해 다 파악하지 못했다. 비례대표 투표나 당내 경선은 내 입장에서는 학습하는 과정이다. 아마 이번 총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배워야 할 것 같다. 이후 당의 새 지도부를 뽑을 때 당이 고쳐야 하는 게 무엇인지 내 의견을 얘기할 것이다. 아직은 선거 국면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이르다.

진보와 보수 이전에 옳고 그름이 있다.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지켜야 하는 원칙과 상식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기반 위에서 국민에게 다가서는 면이 당에 부족하지 않나 살피고 있다. 노동현장 쪽에서는 당이 노동계의 소망이나 정서와는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 같다. 지금 그 원인을 정확히 꼬집기는 어렵다. 다음달 총선 이후 있을 당 지도부 선거는 당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거리를 두기는 했지만, 유 대표는 지난달 당의 총선후보 조정 문제로 갈등을 겪다 당 대표 업무를 거부한 전력이 있다. 당시 그는 당 게시판에 “당의 통합과 총선 승리를 저해하는 여러 일들이 당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단이 없는 현실 앞에서 너무나 심각한 무력감을 느낀다"는 글을 남겼다.

- 총선 이야기로 돌아가자. 국민들에게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낯선 존재다. 남은 기간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전략은 무엇인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곳에서는 시민들이 그 어떤 자유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옛 민주노동당은 매우 선명한 진보정당이었다. 통합진보당은 단순히 노동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세우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조건을 인식해야 한다. 배타적인 계급정당이 아니라 노동자·농민·서민의 요구를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는 국민정당이 돼야 한다. 노동세력과 시민세력이 이해하고 제휴할 수 있도록 당을 만들고 싶다."

“나는 케이크 위에 있는 생크림”

-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노동 없는 진보정당을 우려하고 있는데.

"여러모로 봤을 때 현재 당은 노동이 중심이다. 노동의 정치적 지도를 많이 받고 있고, 또 우리가 발전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케이크로 치자면 모카케이크 위에 얹어진 야단스러운 생크림 역할이다. 데코레이션이라는 말이다.

당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으로서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 참여정부가 남긴 부채를 인지하면서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를 통합진보당으로 맞아들이는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지금은 당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할 시기다. 과거 민주노동당 세력이 지금 통합진보당의 중심세력이다. 이것은 흔들릴 수 없다. (노동계가) 의심하기보다는 함께 소통했으면 좋겠다. 조준호 공동대표가 취임하면서 많은 보완이 이뤄졌다고 본다."

- 당 대표가 된 후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는지 궁금하다. 그들과 소통하고 있나.

"조합원 교육을 다니고 있고, 연맹 대의원대회도 간다. 현장방문도 한다. 아직은 어색하다. 피차간에 어색하게 느낀다. 시간이 필요하다. 한 지붕 아래 들어온 지 이제 100일이다. 당 통합작업과 총선 준비작업만 했지 실제 정치활동은 아직 못해 봤다. 총선 이후부터 하면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치인’보다 ‘저자’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더 어울린다고 고백한 바 있는 유 대표에게는 이른바 ‘먹물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유 대표는 인터뷰를 하면서 “노동자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서도 “만나면 어색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는 “동지로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괜찮은 친구’가 생겼다는 정도에서 시작할 수 없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노동자와 정치인 유시민 사이에는 심리적 거리보다 더 깊이 패인 상처들이 여전히 아물지 못한 채 남아 있다.

▲ 사진=정기훈 기자

“참여정부는 노동을 몰랐고, 노동계는 참여정부를 적대시했다”

- 2004년 참여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자천해 노무현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를 들은 적 있다. 만약 유 대표가 참여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했다면 노동정책이 어떻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 이야기에는 전사가 있다. 2003년 참여정부 첫 내각에 현재 통합진보당 파주을 후보인 김영대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기용하려고 했다. 김 후보는 당시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 몸담고 있었다. 대통령은 최종 결재에 올라온 장관 후보에 빨간 줄을 쳐 가며 그를 노동부장관에 앉히려고 했지만 국무총리가 반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러면서 노동정책이 국정 초반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정부에 대한 노동계의 불만과 실망은 2004년에도 높아져만 갔다. 김 후보를 다시 노동부장관으로 추천했지만 당시 총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을 찾아가 ‘노동부에 가서 풀어 볼까요’하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이 화를 낸 이유는 따로 있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던 시절 영남지역 노동조합 치고 노동상담을 안 받아 본 곳이 없을 정도로 노동계와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도 노동문제가 안 풀렸다. 노동부에 유시민이 간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 참여정부가 노동계와 각을 세운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서로 간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과 참모 모두 노사관계 현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노동운동 주체세력들에 대한 의식 파악도 충분히 안 됐다. 노사관계나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소신이 불확실했다.

노동진영도 문제가 있었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이던 시절에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에 갔다. 그때 대통령은 우리들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부속실에서 말리는 것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참석한 상태였다. 그런데 준비된 의자가 접이식으로 너무 딱딱한 것이어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의전 문제가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였다. 그런데 잠시 나갔다 돌아오니 의자가 다시 접이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게 어떤 의미냐면 처음부터 노무현 당선자에 대해 노동계가 적대시했다는 것이다.

이어 기습적인 화물연대 파업이 있었다. 대통령은 미국에서 전화를 했는데 상황실에서 전화를 안 받았다. 대통령은 격노했고 이후에 사람이 잘리고 그랬다. 그만큼 화물연대 파업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2003년 철도 파업이 가장 컸다. 대화가 여러 차례 오갔는데 감정적인 골이 생겼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필요 이상의 적대적 분위기가 노동계에서 느껴졌다. 전교조 네이스 사태도 그랬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계가 적대적인 분위기여서 괴로웠다. 서로를 해친 원인이다."

-그렇게 대립했던 노동진영과 다시 한 편이 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권이 교체됐을 때 다시 그런 문제가 반복되면 망한다. 그래서 야권연대가 중요한 것이다. 잘 모르면 적대감이 쉽게 생긴다. 자주 접촉하면 근거 없는 적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시절 야권연대와 진보적 정권교체 전략 방침을 그대로 채택하고 있다. 서로 다르고 차이도 크겠지만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농민들의 생존권을 수호하자는 큰 틀에서 경쟁보다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유 대표는 얼마 전 방문했던 경남 통영의 중소조선소 신화SB의 예를 들었다. 중국의 저가전쟁에다 유럽발 경제위기로 국제 해운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현재 우리나라 중소조선소들은 줄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쳐 1천700명이 일하고 있는 신화SB도 문 닫을 고비에 서 있다. 유 대표는 “신화SB가 부도가 나면 노동자 가족들까지 1만명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통영지역 경제는 어떻게 되겠냐”며 “정부 욕만 한다고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대표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야권연대로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하는데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대통령을 공격한다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운영과 정국운영을 함께 책임지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야 할 때라고 본다."

“대권? 즐겁게 경선할 수도”

그러면서도 유 대표는 대선구도를 묻는 질문에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연립정부 구성을 못 박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참여정부의 교훈을 제대로 새겨야 한다. 민주당은 노동·농민·진보정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당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진짜 실전에서 싸우면 둘 다 죽는다. 싸우더라도 격식을 갖추고 치명적인 급소는 때리지 말아야 한다.

대선 연대는 아직 집을 짓다 만 상태다. 앞으로 큰 틀의 흐름은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연합구도로 국회를 운영하면서 드러날 것이다. MB정권 심판과 책임추궁을 통해 국회 차원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 통합진보당 인사로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데 대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노무현 대통령도 지지율 1%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사실 야권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큰 의미가 없다. 현재로서는 문재인·안철수를 제외하면 지지율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당에는 이정희 대표도 있고 노회찬 대변인도 있다. 물론 나 역시 즐겁게 (대선후보) 경선을 치를 수도 있다."


[상자기사] “노조법 재개정 입장? 클라이언트 의견대로”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노동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노동계 핵심 이슈인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에서 일했다는 것이 쪽팔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재개정 문제가 나오자 "특별한 의견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유 대표는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은 현대차에 대한 유죄선고일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유죄선고"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노동부가 방관했다는 것이다. 그는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단하는 문제를 정부는 왜 단호하게 못했는지 쪽팔리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유 대표는 "그저 말로 '반성한다', '미안하다'고 할 게 아니라 법을 바꾸는 것을 포함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면 노조법 재개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당 입장에서 노동계는 선거 때마다 표도 주고 세액공제도 해 주는 클라이언트"라며 "노동계 의견을 받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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