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현미 기자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통령이나 선생님을 많이 얘기했잖아요. 요즘에는 정규직이나 공무원이라고 한다네요. 부모들이 비정규직·정리해고로 고통 받는 것을 보기 때문이죠."

지난 10일 서울광장에는 여러 채의 텐트가 들어섰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99% 희망광장' 참가자들이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22일 오전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김소연(42·사진)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기륭전자 노사는 2010년 11월 조합원 10명의 정규직 복귀에 합의했다. 불법파견으로 노사분규를 겪은 사업장에서 나온 첫 고용보장 합의였다. 합의 이후에도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연대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김 전 분회장은 "워낙 재판도 많고, 전국을 돌면서 연대해 준 동지들에게 인사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고 말했다.

기륭전자 조합원 10명은 오는 5월1일 현장에 복귀한다. 합의 후 1년6개월 만이다. 조합원들은 노사합의 후에도 분회 상근을 결의했다. 현재 10명 중 생계활동을 하는 3명을 제외하고 7명이 상근을 하면서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복직을 코앞에 둔 김 전 분회장은 "조합원 모두 희망광장 농성에 집중하느라 복직에 대해서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출근을 해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데요. 매번 경찰한테 둘러싸이고 피켓이 부서집니다. 두세 명이 한꺼번에 피켓도 못 들게 합니다."

1인 시위를 마친 농성자들은 오전 9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매일 기자회견을 연다.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경찰에 막혀 최근 며칠째 민원서류를 접수하지 못했다. 희망광장에서는 가요를 부르다 노동자가 연행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찰은 21일 저녁 문화제를 마치고 마무리로 트로트 가요 '무조건'을 부르던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연행했다. '무조건'적인 연행이었다.

"새누리당도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고 있어요. 정부와 여당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겠죠. 19대 국회는 사회 양극화의 주범, 비정규직 문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지난달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김 전 분회장은 "이제 불법파견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만으로는 협소하다"며 "상시업무에는 무조건 정규직을 고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용자들이 불법파견을 피해 가려고 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고 있어요.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채우고 있습니다. 법망만 교묘히 피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합니다."

희망광장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일까. 김 전 분회장은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생각하게 됐다"며 "하지만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정리해고가 지속되면 노동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겁니다.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김 전 분회장은 "많은 비정규직들이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해고와 구속을 걱정하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앞장서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정규직을 꿈이라 말하지 않고 특기를 살려 꿈을 키우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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