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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조운동 10년 '피와 눈물의 역사' 딛고 일어서다총·대선 앞두고 "공무원노조법 폐기, 대정부 단체교섭 쟁취" 화두로 떠올라
▲ 대한공노련이 2002년 3월16일 경찰의 원천봉쇄로 출범식 장소인 서울 양재문화회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출범을 선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천 초대위원장·이남순 전 한국노총 위원장·김성태 전 한국노총 사무총장.

▲ 2002년 3월23일 전국공무원노조 출범식이 열린 고려대 강당에 경찰병력이 진입해 대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날 노조 대의원 181명이 연행됐다.

#1. 정확히 10년 전 3월16일. 서울시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이 막혔다. 경찰이 원천봉쇄에 나선 것이다. 결국 회관 주차장 내 버스 안에서 출범 선언이 이뤄졌다. 최초의 공무원노조 조직인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대한공노련)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대한공노련을 도왔던 한국노총 이남순 전 위원장과 김성태 사무총장도 경찰의 폭력에 노출됐다.

#2.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3월23일. 전국공무원노조 출범식과 임원선거가 열린 고려대 강당에 경찰병력이 들이닥쳤다. 창립대의원대회를 마치고 막 임원선거를 치르려던 순간이었다.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공무원 181명을 연행했다. 2명은 구속됐다. 공무원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공무원 전국단일노조였다.

피와 눈물의 공무원노조 역사 태동


공무원 노조운동의 역사는 말 그대로 피와 눈물의 역사였다. 공무원이 노동자다? 공무원이 노조를 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가혹했다.

97년 3월 PC통신망 나우누리에 20여명의 공무원들이 모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던 때였다. 그들은 공무원 단결권이란 희망을 꿈꿨다. 그해 말 외환위기가 닥쳤고 98년 2월 노사정위원회가 공무원직장협의회 설치에 합의했다. 99년 1월 공무원직장협의회법이 시행됐다. 같은달 12일 최초의 공무원직협인 산업자원부직협이 설립됐다.

정부는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공무원직협법은 직협 간 연합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막을 수는 없었다.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간담회(99년 6월)를 거쳐 2000년 2월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발전연구회(전공연)가 출범했다. 153개 직협이 참여했다. 최초의 공무원 전국조직이었다. 이듬해 3월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이 깃발을 올렸다.

엇갈린 2개의 공무원조직

역사는 그때부터 엇갈렸다. 법외조직 전공련 출범을 놓고 의견이 나뉘어진 것이다. "법 테두리에서 활동해야 한다"며 전공련 합류를 거부한 세력이 갈라져 나왔다. 공무원조직이 크게 현재의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으로 나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공무원노조를 추구한 전공련의 시련이 시작됐다. 전공련 출범식을 경찰의 눈을 피해 연세대에서 서울대로 옮겨야 했고, 정부가 기어코 서울대 강당의 전기를 끊는 바람에 촛불을 켜고 행사를 진행했다. 전공련은 2001년 6월 창원대에서 첫 전국공무원노동자대회를 열고 정부의 탄압을 비판했다. 당시 차봉천 위원장은 “공무원노조 입법을 약속하지 않으면 1년 안에 (법외노조인) 공무원노조를 출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전공련 지도부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명동성당·인천산곡성당·부산남천성당·창원사파성당에서 전공련 농성이 이어졌다.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같은해 7월 노사정위에 공무원노동기본권분과위원회가 설치됐다.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면서 전공련의 노조 추진을 막으려는 여러 가지 포석이 깔린 선택이었다.

잇단 공무원노조들의 출범

하지만 공무원노조는 이미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전공련에 합류하지 않고 전공연에 남은 이들이 2001년 8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준비위원회(공노준)를 발족시켰다. 이정천 대한공노련 초대위원장은 “2002년 초 공무원노조법 제정을 요구하기 위해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형사와 전경들에게 공중부양돼 닭장차에 실렸다”며 “현행범도 아니고 도주 우려도 없는 국민을 함부로 납치·감금해도 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고 회고했다.

전공련도 그해 9월 공무원노조건설추진단을 구성했다. 공무원노조 출범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한 축에서는 노사정위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노사정 간 논의는 쉽지 않았다. 당시 노동자 대표로 한국노총과 전공연이 참여했다. 1년의 논의 끝에 합의에 실패했다. 막판 걸림돌은 노동조합에 대한 노·정 간 견해차였다. 정부는 "공무원노조가 아니라 공무원조합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2002년 국회에 제출한 공무원조합법은 △시행시기 4년 유예(2006년 시행) △가입대상은 제한적 6급 이하 △단협체결권 부인(1.5권만 인정) △상급단체 구성금지 등을 담고 있었다.

가혹한 탄압, 해직자 420명 발생

2002년 3월 대한공노련(위원장 이정천)과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차봉천)가 잇따라 출범했다. 두 조직 모두 법외노조였다. 정부의 탄압은 전국공무원노조에게로 집중됐다. 차봉천 초대위원장(2008년 9월 작고)이 같은해 10월 구속됐다. 노조는 노명우 직무대행체제로 11월에 3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연가파업을 벌였다. 지도부가 구속되고 조합원 수백 명이 징계를 받았다.

당시 직무대행이었던 노명우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위원장은 “우리의 투쟁은 DJ정권의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 약속 이행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며 “투쟁을 통해 노동기본권에 대한 공무원들의 열망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허용’을 공약했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노동부는 2004년 10월 공무원노조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노동2권만 인정하는 한계를 보였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이에 반대하며 그해 11월 15~17일 사흘간 4만5천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벌였다. 정부는 3천명을 징계하고 420명을 파면·해임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초강수였다. 이후 재판을 통해 많은 이들이 복직했지만 아직도 해직공무원이 132명이나 된다. 해직자 문제는 지금도 공무원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이다.

공무원노조의 분열과 통합

공무원노조법은 2004년 12월 국회를 통과했고, 1년여가 지난 2006년 1월부터 시행됐다. 기존 공무원노조들의 합법화는 물론 신생노조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대한공노련은 2004년 4월 출범한 전국목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박용식)과 2006년 9월 통합해 현재의 공노총을 출범시켰다. 이외에 전국기능직노조(2006년 2월)·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조(2006년 5월)·행정부공무원노조(2006년 9월)·법원공무원노조(2007년 7월)·한국공무원노조연맹(2007년 11월)이 잇따라 설립됐다.

공무원노조들은 분열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2007년 7월 전국공무원노조에서 민주공무원노조와 중앙행정기관공무원노조가 이탈했다. 노선 차이와 노조 탄압에 따른 분열이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2년 뒤인 2009년 9월 전국공무원노조와 민주공무원노조, 그리고 법원공무원노조가 전국공무원노조로 통합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일까. 노동부는 해고자가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를 두 차례에 걸쳐 반려했다. 하루아침에 다시 법외노조가 된 것이다.

'부침의 역사' 속 성과와 한계

공무원노동계의 조직 역사는 통합과 분열, 부침의 역사였음에도 상당한 성과를 남겼다. 정용천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무엇보다 공무원도 노동자임을 당당히 보여 줬고 뿌리 깊은 부정부패 해소와 공직사회 개혁에 앞장섰다고 자부한다”고 평가했다.

대정부 단체교섭도 성사시켰다. 공노총을 비롯해 36개 공무원노조 조직이 10명의 교섭위원을 구성해 2007년 7월 최초의 대정부 단체교섭을 시작했고, 같은해 12월 타결했다. 최장윤 공노총 정책실장은 “6급 이하 정년연장의 단초를 마련하고 공무원 노사관계를 처음으로 정립했다”며 “단체교섭 내내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는 한계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5월 5급 이상(60세)과 6급 이하(57세)로 구분돼 있던 공무원 정년차별을 없앨 수 있었다. 2009년 12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사회적 합의안 국회 통과, 지난해 6월 기능직 10급 폐지 등의 성과를 거뒀다. 지난달 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공무원 직종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공무원노조들의 역할이 컸다.

공노총은 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조와 전국광역자치단체공무원노조연맹이 지난 2일 통합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무원노총)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이 완료된다면 전국공무원노조와 함께 ‘공무원노동계 양대 노총’ 시대로 접어드는 셈이다.

핵심 과제는 공무원노조법 폐기와 공무원노조 인정

공무원 노조운동 10년을 맞은 올해 3월 현재 공무원 노사관계 지형은 법내·외 공무원노조를 막론하고 녹록지 않다. 전국공무원노조는 3개 조직 통합으로 국내 최대인 조합원 14만명(자체 추산)의 거대조직으로 거듭났음에도 법외노조인 관계로 손발이 묶여 있다. 공노총(조합원 7만7천명)과 공무원노총(3만5천명)은 통합을 앞두고 있지만 대정부 교섭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정부 단체교섭은 2007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특히 공무원노조법상 예산과 정책을 단체교섭 범위에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노총 모두 공무원노조법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총·대선이 있는 올해를 공무원노조법 폐기와 노조법 적용을 이슈화하는 데 적기로 보고 있다. 정의용 공노총 위원장은 지난 17일 공노총 창립 10주년 기념 ‘3·17 노동문화제’에서 “올해는 총·대선이 있는 정치적 변혁기”라며 “공무원노조법 폐기와 대정부 교섭을 쟁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불인정 문제는 더욱 심각한 이슈다. 국제공공연맹(PSI)을 비롯한 국제노동단체는 “한국정부가 ILO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와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를 비준해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당 사안은 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한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김중남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시대가 변한 만큼 정부도 공무원노조 설립을 인정해야 한다”며 “바람직한 공무원 노사관계 구축과 공무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파트너십을 갖고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26일 오전 노동부에 세 번째 설립신고서를 제출한다. 정부가 안정적 공무원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윤정  yjyo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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