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정치 갈아엎고 새 봄에 새 종자로’
선거 캐치프레이즈부터 구수한 이병은(51·사진) 통합진보당 야권단일후보(여주·가평·양평)는 이력이 독특하다. 직접 쌀농사를 짓고 된장을 담가 먹는 농민이면서 낮에는 청량리역에서 차량검수원으로 일하는 철도노동자다. 농민과 노동자 모두 현직이다. 양동역에서 청량리역까지 매일 무궁화호를 타고 한 시간 거리를 출퇴근한다. 거기에 양평지역 첫(?) 서울대 합격생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이만하면 농촌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삼색을 두루 갖춘 셈이다.

최근 이 후보는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됐다. 이변이었다. 이 후보가 민주통합당 후보를 이기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후보는 12년 동안 새누리당이 집권한 이 지역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1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에서 이 후보를 만났다. ‘양동느티나무집’이라는 푯말이 있는 그의 집 앞 마당에는 장독대가 즐비했다. 모두 그가 담근 된장·고추장·김치다.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양평읍 환경미화원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진행됐다. 집에서 양평읍 사무실까지 40분이 걸렸다.

- 야권단일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했나.

"예상하지 못했다. 예비후보 등록도 2월 초에야 했다. 이 지역은 정치적으로 보수 쪽이다. 저와 당원들은 진보세력을 만들어 나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진짜 선거에 이기겠다는 것보다 뭔가 새로운 정치적 기운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어떻게 민주통합당 후보를 앞질렀나.

"선거대책본부에서 열심히 뛰었다. 철도 해고자들도 많이 지원해 주고 있다. 마을회관을 다 찾아다녔다. 선거구역이 워낙 넓다 보니 여주·양평·가평 지역별로 선대본이 있다. 선대본을 중심으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였다. 복리이자처럼, 가지치기를 하듯 사람들이 퍼져 나갔다. 무식하게 알렸다."

-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에서 한나라당 아성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다. 진보세력의 목소리를 결집시켜야 했다. 주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후보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어렵지만 누군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내가 그나마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 농사를 짓고 있다고 들었다.

"2002년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2·25 파업으로 해고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다리가 불편하신 부모님을 도와 드리면서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마늘·고추를 재배하고 벼농사도 한다. 된장을 담그기 위해 콩도 재배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사회가 되려면 도시와 농촌이 같이 가야 한다. 철도노조에 처음으로 생협국을 만들고 도농교류사업을 했다. 친환경농산물 생산자를 조직하고 소비자인 조합원과 연결해 줬다."

- 어떻게 지역에서 당 활동을 하게 됐나.

"도농거래사업을 하면서 농촌지역을 많이 다녔다. 2004년과 2005년 농민들이 볏가마를 쌓아 두고 야적시위를 많이 했다. 여주·이천·횡성·원주를 돌아봤는데, 양평에만 현수막 하나 없더라. 현수막이라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에 전화해서 당원에 가입하고 모임을 추진했더니 6~7명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2005년 1월 당 지역위원회를 만들었다."

통합진보당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후보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공약했다. 쌀·밀·보리·콩 같은 주요 곡물은 계약재배를 통해 국가수매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축산물과 주요 채소류는 생산량의 50%를 농협을 통해 계약재배할 것을 공약했다. 진보적인 농민 후보만이 낼 수 있는 공약이다.

이 후보는 대학 시절 데모를 하다 잡혀 군대에 갔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다. 그는 "대학은 이성과 지성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하는데, 정상적인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는 하루도 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서울대에 합격하자 군수까지 나서 '한 번 보고 싶다'며 찾아오길 권유했다. 이 후보의 아버지는 데모하는 그에게 "일단 참으라"며 자취방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는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인천의 한 공장에 취업했다. 85년의 일이었다. 노조를 만들고 해고되기를 반복하다 90년 철도청에 입사했다. 이 후보는 직선제로 선출된 첫 번째 철도노조 민주집행부의 원년 멤버다. 2001년 철도노조 서울지역본부 위원장에 선출됐다. 2002년 파업으로 해고됐다가 2006년 12월 복직했다. 최근까지 현장에서 일했는데,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달 말 휴직을 신청했다.

- 철도노조 서울지역본부장을 지냈는데. 노조 활동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생생한 기억이 많다. 90년 당시 서울객화차지부(현 서울차량지부) 조합원이 630여명으로 지부 가운데 가장 컸다. 지부장이 정년퇴직하면 총무부장이 지부장을 하는 식으로 40년을 흘러왔다. 그러다 92년 소위 야당이 집권했다. 95년 철도노조 전체 지부 중 처음으로 직선제를 실시했다. 당시 노조 선거관리규정은 간선제였다. 말하자면 선거법을 어긴 것이다. 직선제를 통해 지부장으로 당선됐는데, 선거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노조에서 징계를 당했다. 2년 동안 권리가 정지됐다. 그런 세월을 10년 버텼다. 2000년에야 '야당'이 집권했다."

- 정병국 새누리당 후보와 맞대결을 펼친다. 어떻게 전망하나.

"조민행 민주통합당 후보보다 쉬운 상대다. 정 후보는 4선을 노리고 있다. 너무 오래했다. 지역에서는 정 후보가 12년 동안 지역사회에 무엇을 했느냐는 정서가 깔려 있다. 시장이 거의 죽었다. 식당에 들어가면 손님이 없다. 자기 건물이 아니면 월세나 전세조차 걱정하는 상황이다. 노인들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집에 못 찾아올 정도로 어렵게 생활하는 것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4대강으로 예산이 몰리면서 노인들에 대한 복지혜택도 줄었다. 기초생활수급권자 기준이 강화되면서 농촌의 노인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MB정부 실정에 대판 비판적 정서가 크다."

- 당선되면 어떤 입법활동을 할 것인가.

"국토해양위원회로 갈 것이다. 지역 개발뿐만 아니라 철도정책 입안에 힘쓸 것이다. 노조에서 급할 때마다 국회의원들한테 건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정책토론을 할 것이다. 그래야 조합원들도 편하지 않겠나. 현장에서 나온 정책 요구안을 정제해 입법발의할 것이다. 철도에만 20년을 근무했으니 개인적인 지식과 노하우가 있다. 주변에 철도전문가도 많다. 풀뿌리 정치를 할 것이다."

- 농촌 주민들에게 통합진보당을 인식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처음 선거운동에 나설 때는 '빨갱이'라고 할까 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의외였다.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시더라. 세상이 바뀌었다. 물론 이름은 많이 헷갈려 하신다. '통합진보신당'이라고 부르는 분도 계신다. 한참 말씀하시고는 '그럼 민주당에서 공천은 받은 거야'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아신다."

- 선거운동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농촌지역이다 보니 마을회관을 많이 다녔다. 어르신들은 2월까지 마을회관에서 공동으로 취사를 하며 생활하신다. 가면 먼저 큰 절을 드리고 어려움이 무엇인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시간은 더 많이 걸렸지만 그만큼 더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 가면 꼭 밥 먹고 가라, 막걸리 마시고 가라고 권하신다. 유권자로부터 얻어먹고 다니는 후보는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웃음)"

이 후보가 예비후보로 등록할 때만 해도 선거구역은 양평·가평이었다. 그러다 여주가 분리돼 선거구역이 대폭 늘어났다. 선거구역 직선거리만 100킬로미터다. 돌아가면 180킬로미터나 된다. 세 지역이 전체 경기도 면적의 20%를 차지할 정도다. 도시처럼 걸어다니는 선거운동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가 지금까지 다닌 거리만 수만킬로미터에 이른다. 그렇게 이 후보는 철도노동자로, 농민의 아들로 농촌지역에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이 후보의 첫 번째 공약은 "초심을 잃어버리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가 공약을 실현할 수 있을지, 여주·양평·가평에 진보정당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병은 통합진보당 후보는
1961년 양동 출생
양동중학교 졸업
원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3학년 중퇴
육군병장 제대(22사단)
전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위원장
전 철도생활협동조합 국장
현 통합진보당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특별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