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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멀고 먼 노동자 권리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
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

법률원에서 노동사건만 한 지도 벌써 9년째에 접어들지만 지금도 간혹 믿기지 않은 상담을 받을 때가 있다. 며칠 전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함께 법률원으로 들어왔다. 한눈에도 선해 보이는 인상의 두 분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대략적인 상황은 이러했다. 휴대전화 부품조립을 하는 아주머니였는데, 설을 며칠 앞두고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겨우 몸을 추스르던 차에 회사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 찾아가니 회사 관리자들이 둘러앉아 대뜸 사직서를 내밀었다. 이미 다 작성돼 이름과 서명까지 된 사직서였다고 한다.

설마 서명까지 가짜로 했을까…. 선뜻 믿기지 않았다. 의심의 눈초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너 번을 반복해서 물었다. 나중에 사직서 복사본을 보고서야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사직서에는 마치 아주머니가 직접 작성한 것처럼 서명이 돼 있었다.

회사는 설 명절 상여금 지급을 조건으로 집요하게 사직을 종용했다. 회사 주장인즉 설 전에 쓰러졌고 설날에는 병원에 있었으니 명절상여금을 줄 필요가 없는데 사직을 하는 조건으로 상여금을 주겠다는 아주 황당한 논리였다. 일하다 쓰러진 사람한테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해 봤으나, 아주머니의 병명이 유전적 소인이 강하다고 알려진 질병이고 입사 전부터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회사는 매우 당당했다고 한다.

거기까지 듣고 있던 나는 울화통이 터져 당장 사문서 위조로 고소하자고 하면서 그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당시 몸도 성치 않았던 아주머니는 병원비 걱정에 상여금이라도 받기 위해 회사의 요구를 들어줬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아주머지는 퇴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퇴사한 이후에도 설 상여금은 입금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직서는 쓰러진 날짜로 소급해서 작성된 것이었고, 회사는 설 전에 사직한 것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상여금을 안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우라질(!) 아픈 사람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사기를 치다니…. 사업장에 노조가 없으니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었던 그분들은 다행히 용기를 내서 금속노조 경남지부를 찾아온 것이었다. 노조 조직률이 불과 10%대에 머물고 있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 인근에 공장들이 많다 보니 낮 시간에 상담이 많다. 18명이 일하는 조그마한 회사였다. 매일같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씩 일하면서 간혹 일요일까지 특근을 해야 한다면 누구나 좀 쉬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당일 정해진 양을 끝내야 한다면서 밤 10~11시까지 추가 연장근무를 요구했다. 모래를 이용해 자동차 부품의 주형틀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 그래서 저녁 8시까지는 일을 하되 그 이상 연장근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가 동의하는 경우에 한해 연장근무를 하되 주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근로기준법 어디를 봐도 회사가 저녁 8시를 넘어 추가 근무를 요구할 근거가 없다. 그런데 회사는 근로자를 징계에 회부했다. 업무지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가져온 징계처분장을 보니 징계사유로 성실근무 위반, 업무지시 위반 등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문구들만 가득했고, 결국 보직을 변경하고 상여금의 50%를 삭감하겠다는 것이었다. 부당징계구제신청을 하고 강제근로 고소도 하고, 언론제보에 근본적으로 노조가 필요하다고 하니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다며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바에야 회사와 각을 세우고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고 했다.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연락이 없다. 내일 전화라도 한번 해 봐야겠다 생각해 본다.

송영섭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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