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다. 올해 군에서 시로 승격했고, 인구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이 늘어난 지역이었다. 전국 쌀 생산량 2위라는 농업도시이면서도 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휴스틸·동부제철 같은 국내 굴지의 철강업체들이 즐비한 곳이다. 유입되는 인구의 상당수가 공업지역을 향한다. 지역의 주력이 농민에서 노동자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업과 공업이 함께 서고, 자본이 미개발지를 찾아 확장되면서 당진은 한국의 뜨거운 현안을 모조리 옮겨온 듯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농민들의 몰락, 거대 기업들의 환경파괴, 노인문제 등이 그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낸 어기구(50·사진) 박사가 당진에서 4·11 총선 도전장을 냈다. 김낙성 자유선진당 의원이 3선에 도전하는 당진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제 갓 정치에 입문한 신진 정치인이 노련한 정치인에게 맞서는 형국이다. 어기구 후보는 "철강회사가 들어서기 전에 석양이 빨갛게 물드는 아름다운 해안에서 살았다"고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당진시에 있는 조그만 선거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어 후보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서민의 눈물을 진정으로 닦아 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야권세가 약한 지역인데. 분위기는 어떤가.

“김낙성 국회의원이 군수 세 번에 국회의원 두 번하고 세 번째 도전하고 있다. 20년이다. 이제는 바꾸자는 분위기가 많다. 주민들을 만나 보면 새로운 인물을 갈구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다.”

- 야권단일화 협상은 어떻게 되고 있나.

“충남 지역은 중앙당 차원에서 조율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김희봉 후보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후보 간 ‘원샷 경선’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손창원 후보 쪽에서 거부하고 있다. 진보신당이 빠진 야권연대는 의미가 없다. 야권연대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본선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4년 전보다 인구가 많이 늘었는데, 대부분 노동자들이다. 태어난 고향도 현대제철이 들어선 곳이고…. 노조에서도 지지선언을 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한 복지·고용 전문가인데. 어떤 복안을 갖고 있나.

“철강회사에 취업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없으니 광양이나 울산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온다. 앞으로 당진의 항만이나 철강산업이 더 커질 것이다. 폴리텍대학처럼 산업화에 맞는 대학이 필요하다. 항만·철강산업 관련한 인재를 키워 내면 기업들은 인재가 있으니까 좋고, 젊은이들은 타지로 안 나가더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당진의 미래 모습을 자주 생각해 본다. 내가 공부했던 오스트리아의 린츠 같은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준비할 게 뭔지 대강의 그림은 그리고 있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다. 당진은 대한민국에서 개발이 가장 많이 되는 곳이다. 중국이 가까워서다. 신규로 제철소가 완공되면 인구가 금세 20만명이 될 것이다. 그랬을 때 당진의 모습을 그려 봐야 난개발이 안 된다. 공단은 공단대로, 주거지는 주거지대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도시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당진에 공장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도 노동계가 당진시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 당진시장이 노동계를 만나질 않는다. 지역 노사민정위원회와 같은 거버넌스를 구축해 당진의 환경문제와 고용문제, 노사관계 문제와 관련한 정책결정에 노동계가 참여할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하고 싶다. 교육·환경부문에서도 마찬가지로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된다. 안 되니까 싸우고 파업하는 거다.”

어 후보는 독일이 통일되던 해인 1990년 무작정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각국을 다니다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주민들이 여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길래 나라를 이렇게 잘 가꿔 놓고 살까”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빈국립대학에 입학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학부부터 11년을 공부한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으로 빈국립대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 당진의 주요한 지역이슈는 무엇인가.

“현대제철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한여름에도 쇳가루 때문에 창문을 못 열어 놓는다. 악취가 난다. 그래 놓고 마을에는 콩고물 같은 돈을 준다. 마을발전기금이라고 주면서 입막음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돈은 많이 벌어가면서 환경을 파괴시키고 있다. 오스트리아 린츠도 철강도시다. 그런데 먼지 하나 없다. 숲을 가꾸고 친환경 공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사회에 엄청나게 환원한다. 지역 청년을 고용하고, 대학을 만들고, 숲을 가꾸는 일을 기업이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산업과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돈만 벌어가고 환원하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 당진이 고향이라고 했는데 어릴 때와 비교했을 때 고향이 어떻게 변했나.

“어릴 때 바닷가에서 수영하면서 살다시피했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이 들어서면서 초토화됐다. 어머니가 바다에서 나오는 생선을 대야에 이고 행상을 하셨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수십리길을 갔다가 걸어서 밤 12시에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나보다 어머니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다. 당시 어머니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하겠다는 꿈을 꿨다. 대한민국 노동자·서민이 얼마나 열심히 사나.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이 가장 세고 길다. 그런데도 40대 자살률이 세계 최고다. 서민들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땀 흘려 일한 사람이 행복한 세상,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면 사회통합을 할 수 없다. 사회통합을 못하면 절대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 요새 정치권에서 복지재정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는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오스트리아는 무상의료다. 어떤 병이 걸리든 완벽한 시설에서 좋은 의료진에게서 치료를 받는다. 우리보다 의료보험료가 두 배 정도는 비싸다. 국민들이 1만원만 더 내면 유럽처럼 무상의료를 할 수 있다. 1만원을 내지 못해 무상의료를 못하는 게 아니다. 보험개발원 추산을 보면 가구당 사보험이 10만원이나 된다. 국가가 안 해 주니까 국민들이 불안하고, 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제도를 새로 디자인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효율적이 되고, 국민들이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투자다.”

-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노동자 후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노동자 후보이면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후보라고 생각한다. 한미FTA 문제나 환경문제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다. 당진을 와 보니까 지역정권이 오래 고여 있어서 1대 99 사회가 돼 있었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노동자밖에 없다. 자본가가 닦아 주겠나, 재벌이 하겠나, 보수 정치인이 하겠나. 정치를 통해 자본의 대항권력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럴 때만 노동자·농민·서민이 힘 펴고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노동계 후보들이 너무 없다. 책임감이 크다. 그런 생각을 가진 노동계 후보들이 힘을 모으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보수우파들과 논쟁을 해서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노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사회의 파트너인 노동계를 배제하고 있다. 국가 미래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사회의 축은 노동과 자본이다. 노동이 사회변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 비정규직 문제나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는 데 올인할 것이다. 땀 흘린 사람이 행복한 세상, 기득권을 심판하는 데 모든 역량을 바쳐 일하려고 한다.”

당진에서 공천을 신청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는 5명이나 됐다. 매번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이도 있고, 지자체장 선거에 나섰던 이도 있었다. 어기구 후보가 당진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그가 ‘현격한 경쟁력 차이’로 단수후보 공천을 받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정치신인 어기구가 보수적인 당진에 새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어기구 민주통합당 후보는]
전 박원순 서울시장 정책특보
전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전 손학규 민주당 대표 고용복지·노사관계 자문교수
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전 고려대 경제연구소 연구교수
전 경기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전 대통령 소속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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