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택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유택윤(47·사진)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지난 2010년 1월 임기를 시작한 이후 틈틈이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현장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조합원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왜냐고 묻자 조합원들은 "지점장이 두렵다"고 했다. 질문은 다시 스스로에게 던져졌다. 어떻게 하면 조합원들에게 용기를 줄까. 자신을 돌아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이달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기업은행본점 노조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유택윤 위원장은 “나 역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차장 정도에 불과하지만 위원장이라서 은행장에게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현장 조합원들에게 ‘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기업은행 노사는 본부 부서와 전국 지점 700여곳에 노사발전협의회를 운영한다는 데 합의했다. 단위 노사가 현장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협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97~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긴 영업점별 노동운동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 지점·부서별로 노사발전협의회를 만든 목적은.

“현장에서는 매일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진다. 면면을 보면 내부적으로 나서야 해결될 사안들이 많다. 그런데 조합원들에게 얘기하면 ‘어떻게 지점장에게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위원장이니까 은행장과 나란한 위치에 있는 것이지, 현장에 가면 평범한 차장에 불과하다. 현장에도 여러 권한을 부여한 공식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점장과 분회장(본사 부서 및 영업점 조합원 대표)을 일대일 관계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 노사발전협의회를 통해 어떤 것들이 논의되나.

“임금·복지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협의의 대상이다. 우선 일상적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부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은행은 전국 지점별로 춘추 체육대회를 연다. 그동안 장소·날짜 결정권은 전적으로 지점장에게 있었다. 등산이나 낚시가 싫어도 지점장이 원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했다. 이제는 이러한 사소한 일에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할 공식적인 창구가 생기는 것이다. 향후 근무시간 정상화 등 큰 틀의 논의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현장 영업점에서는 특정 고객 때문에 전체적인 퇴근시간이 늦춰지는 일이 잦다. 늦게 오는 기업은 늘 늦게 온다. 이럴 경우 협의회를 통해 노사가 공동으로 해당 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할 수 있다. 도달하기 불가능한 영업목표를 제어하는 것도 협의회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 근무시간 정상화는 금융노조의 권한이자 목표인데,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무리 아닌가.

“현재 대다수 금융노동자들이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다. 이를 조정하는 것은 당연히 협의회 테두리를 넘어선 것이다. 다만 연간 휴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협의회를 통해 이를 조정할 수 있다. 큰 틀에서 조합원들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일이다.”

- 노사발전협의회를 어떻게 관리할 생각인가.

“잘하는 곳은 모범 협의회로 선정해 포상을 하고, 못하는 곳은 철저하게 이행을 촉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협의회 안에 반드시 간사를 두도록 했다. 회의록 작성을 위해서다. 지부 차원에서 회의록을 관리해 어떤 것들이 논의되고 있고, 어떤 것들이 이행되고 있는지 세세하게 점검할 계획이다. 혹시라도 소극적인 지점장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제재를 가할 것이다. 이전에도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지점장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해 왔다.”

- 기업은행 사측은 어떤 입장인가.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노조의 권한이 커지는 것이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부가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켰다.”

- 현장에서 노조 대표가 될 700여명의 분회장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정당한 이의제기는 노동자의 권리다. 지점장의 독단적인 인사권을 방어할 장치도 충분하다. 이제 공식적인 무대가 마련됐으니 용기를 내야 한다. 노동운동 경력이 짧지만 그래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부딪쳐야 답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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