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회사노조(어용노조) 설립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법 개정을 통해 기업단위 교섭,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 등의 독소조항들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사측은 기회만 된다면 민주노조보다는 회사에 협조적인 노조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건 이윤추구가 목적인, 그리하여 인건비 절감을 숙명처럼 여기는 자본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설마 우리 사업장에…”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사측은 임단협 시기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준비해 뒀던 아웃소싱을 관철하기 위해, 또는 인근지역 다른 사업체의 회사노조가 안착하는 것에 고무받아서도 회사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 매년 진행되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나 부분파업에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며 회사노조를 설립할 수도 있고, 공장 매각이나 정리해고 등의 소문을 퍼트려 조합원의 불안감을 극도로 올려놓아 회사노조를 순식간에 과반 노조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해 사측이 민주노조 탄압과 회사노조를 준비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조짐들을 살펴보자. 첫째, 사측이 회사노조를 준비할 때는 재무·생산·노무 등의 책임자가 바뀌는 예가 많았다. 사측이 전열을 정비하는 셈이다. 발레오만도는 2010년 2월 직장폐쇄를 감행하기 몇 달 전에 인지컨트롤스에서 노무관리 및 구조조정으로 이름을 날렸던 자를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KEC는 주로 회장의 재무관리를 담당하던 최측근을 공장장으로 발령하더니, 직장폐쇄 몇 달 전인 2009년 말에는 그를 생산 및 구조조정 전권을 쥔 생산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최근 회사노조가 설립된 보쉬전장에서는 공격적 노조탄압을 시작하기 세 달 전에 공장장이 교체되고, 공석으로 있던 노무이사가 새로 선임됐다.

둘째, 사측이 공격적인 선전활동을 노조탄압 몇 달 전부터 시작했다. 노조탄압을 앞두고 여론을 선점하겠다는 발상이다. 주로 경영위기와 공장 매각·구조조정 등 고용불안을 조장하는 내용이거나 현 노조가 조합원의 실리, 노사상생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발레오만도는 2009년 하반기부터 ‘여러분의 대표사원입니다’라는 경영소식지를 내 경영위기·공장철수 등의 협박을 직간접적으로 해댔고,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초부터 사보 ‘열린창’을 통해 금속노조를 비판하고, 노사상생을 강조하는 공격적 내용을 내보냈다. 상신브레이크는 직장폐쇄 5개월 전에 느닷없이 전례가 없던 전 사원 의무교육을 외부 컨설팅회사를 통해 실시했고, 관리직들이 조합원들을 개별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보쉬전장은 지난해 말부터 ‘RBKB 경영소식’이라는 사보에 고용불안을 높이는 내용을 실었다.

셋째, 사측이 기존의 노사관행에 대해 문제제기하거나 노조를 자극하는 행동을 확대했다. 노조 대응력, 현장 조합원 반응 등을 살피는 것이다. 발레오만도는 관행적으로 계속됐던 유급휴무를 가지고 노사교섭을 파행으로 몰고가더니, 2010년 연초부터는 갑자기 기초질서 지키기를 조합원들에게 요구하며 징계를 남발했다. KEC는 지회 교섭을 중앙교섭 이후로 미루자며 딴지를 걸었다.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두 달 전에 공장장이 노조 대자보를 훼손하고, 노조와 협의 없이 노조 공식행사 시간에 관리자들을 현장에 자주 투입했다. 보쉬전장은 발레오만도와 비슷하게 연말 유급휴무를 가지고 시비를 걸더니, 급기야 이에 항의하는 지회장과 노조 간부들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이렇게 사측의 회사노조 설립은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다. 공격적 노무관리를 위한 임원 교체, 조합원을 흔들기 위한 사전 선전작업, 노조와 조합원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기존 관행 무시와 도발적 행동 등 지금까지 회사노조가 설립된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이런 비슷한 패턴을 보여 왔다. 혹시 사업장에 이와 비슷한 흐름이 있다면 올해 회사노조 설립에 대한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한 달 후부터는 금속노조 사업장들의 2012년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위 사업장들은 노사협의나, 임단협 기간에 기회를 봐서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가며 노조 탄압을 시작했다. 민주노조 사업장들은 올해 아예 어용노조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싸울 필요가 있다. 조합원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야 한다.

사측의 어떤 도발에도 민주노조가 준비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아 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민주노조 사수를 결의해야 한다. 지금부터 관성적인 교육이 아니라 사측의 현장 흔들기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해야 하며, 민주노조가 87년 이후 어떻게 현장을 바꿨는지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예전처럼 노조가 모든 것을 대리하는 교섭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참여하고 책임지는 교섭을 진행해야 하며, 산별노조다운 연대와 집단성을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

우리가 “설마”하는 사이에 사측은 지금도 회사노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노조 진영도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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