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더 말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그저 저 같은 비정규 노동자도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요.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하면서도 언제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야 했던 청소용역·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진짜 노동자 정치를 펼칠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 김순자(57·사진) 후보는 다소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진보신당은 울산과학대 청소용역노동자인 그를 비례대표 후보 1번에 배정했다. 각 정당이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출신 후보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진짜 노동자’ 후보는 많지 않다. 존재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김순자 후보를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에서 만났다.

- 비례대표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며칠 전 울산과학대 청소용역업체와 우리 노조(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가 올해 임금협상 상견례를 했다. 내일은 2차 교섭이 예정돼 있다. 한창 교섭 준비를 해야 할 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니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주변에서 많은 격려를 보내 주셨고, 나보다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마 결심을 굳혔다."

- 2003년부터 청소용역 노동자로 일했다. 학교가 아닌 청소용역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은 간접고용 노동자인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2003년부터 10년을 울산과학대에서 청소일을 했다. 처음에는 대학교 직원이 되는 줄 알았는데, 용역업체 소속이 됐다. 처음 입사했을 때 청소하는 직원은 11명이었는데, 이들을 관리하는 관리직이 4명이나 됐다. 그들한테 잘 보이려고 명절이면 백화점 티켓을 끊어다 바치고, 평소엔 음료수를 사다 바쳤다.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관리직들은 우리보다 두 배나 많은 월급을 받았다. 그때는 이게 부당한지도 몰랐다. 나중에 노조가 생기고 협상을 해 보니 용역업체측은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면서 임금을 못 올려주겠다고 버텼다. 정말 비용을 절감하려면 불필요한 관리직부터 줄이면 될 일이다. 간접고용 방식은 비용 측면에서도 합리적이지 않다."

- 청소용역노동자들이 따로 밥 먹을 공간이 없어 계단 밑이나 화장실에서 식사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많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나.

"청소용역노동자를 위한 복지혜택은 아무것도 없다. 임금도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나 1년 일한 사람이나 똑같다. 근속수당이 없고 매년 고용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한 뒤 가장 힘들었던 게 밥 문제였다. 교직원들은 학교식당에서 밥을 주는데, 우리는 제외됐다. 몇 천원씩 돈을 내고 먹자니 부담이 크고,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우리가 노조를 만든지 얼마 안 됐을 땐데,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노조에 가입해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게 ‘외상 밥’을 먹기로 했다. 식당 조합원들이 매일 공짜로 밥을 퍼줬다. 우리의 첫 단체행동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니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돈을 내고 밥을 먹으라며 우리를 닦달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숟가락을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반년 만에 회사로부터 식사 제공을 약속받았다. 첫 승리였다."

- 빌딩이나 학교·병원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쉴 공간이 부족하다. 계단이나 벤치에서 쪽잠을 자는 청소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좀 나아졌는지.

"밥 문제 다음으로 심각한 문제가 휴게시설 문제였다.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열악하다. 여전히 건물 내 자투리 공간이나 계단 밑에서 쉬는 노동자가 많다. 우리 학교만 해도 총장님 혼자 20평 넘는 방을 혼자 쓰신다. 그런데 청소노동자에게는 단 한 평도 제공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런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다."

- 현재 노조 지부장을 맡고 있다. 노조활동을 해 보니 무엇이 달라지던가.

"하늘과 땅 차이다. 임금만 놓고 보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 취급 못 받고, 있는 듯 없는 듯 무시당하던 우리가 떳떳한 노동자로 인정받게 됐다.
또 하나는 고용안정이다. 노사협상을 통해 단체협약에 정년을 67세가 되는 해의 연말로 명시했다. 대부분 고령 여성인 청소노동자들은 매년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노조 활동을 통해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은 큰 성과다."

- 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5천600원을 요구했다.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최저임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최저임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월급으로 주면, 노동자는 굶거나 도둑질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 조합원은 대부분 여성 가장이다. 못해도 170만원은 돼야 먹고살 수 있다.
사회가 좋아지고 문화생활이 발달하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 같은 최저임금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1년에 극장 한 번 가기도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난다.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 지난해만 해도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을 겪지 않았나. 형식뿐인 최임위를 뜯어고쳐야 한다."

- 비례대표 출마사실을 밝혔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리 딸은 “엄마 멋있다. 파이팅”이라며 응원을 해 줬다. 학교에도 소문이 났는지 어제는 용역업체 사장이 내 명함을 새로 파오셨다. ‘○○기업 반장 김순자’ 라고 적힌 명함이다. 사장이 명함을 선물로 주면서 “이건 뇌물 아니니, 열심히 하시라”고 하더라. 아직 당선된 것은 아니지만 축하전화도 많이 받고, 격려도 많이 받고 있다."

- 진보신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김 후보가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지면을 빌려 유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치는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건 줄 알고 살았다. 실제로 현실이 그렇지 않나. 하지만 진보정당은 다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비정규 노동자를 찾아와 우리의 얘기를 들어줬다. 진보정당의 국회 진출은 바로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의원이 한 명 늘어난다는 뜻이다. 많이 부족하지만, 진보신당과 진보정치를 믿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부탁드린다."


[김순자 진보신당 후보는]

55년 7월 울산 언양 출생
반곡초등학교 졸업
울산과학대 청소용역업체 입사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가입
대한민국인권상 수상
울산지역 청소노동자 배움터 ‘노동이 빛나는 아름다운 학교’ 운영위원
더불어숲 노동인권센터 운영위원
현대중공업 경비테러 문제해결을 위한 울산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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