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어요. 아이 아빠는 삶의 의지가 강했던 사람입니다.”

20일 오전 고 이재민(43) 기관사의 빈소가 놓인 서울시 성동구 서울도시철도공사 본사 앞에서 만난 아내 이지은(41)씨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은 자살을 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황장애가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그럼에도 공사측은 아직도 공황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였던 그도 남편의 고통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가족이 걱정할까 봐 본인의 병을 철저히 숨겼다.

하지만 남편의 고통은 서서히 드러났다. 남편은 지난해 5월 병가를 쓰면서 아내 몰래 신경정신과에 다녔다. 그리곤 올해 2월 중순 전직신청이 급하다며 자신이 근무 중이니 진단서를 대신 받아 달라는 남편의 부탁을 듣고서야 아내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는 담당의를 통해 “남편이 공황장애 중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진단서에 공황장애로 기록되는 것을 주저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단서를 받아 2월 말 전직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인은 공사로부터 공식통보를 받지도 못한 채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소속을 듣고 낙담했다. 하지만 이내 힘을 냈다.

“우리 부부는 낙담하지 말자고 했어요.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느냐면서 3월부터 운동을 시작하자고 했죠. 이달 5일에는 헬스클럽에도 등록했어요. 3개월짜리를 끊었습니다.”

고인은 사망하기 전날 밤에도 아내에게 전화에서 “다음날 오전 퇴근 뒤 운동하고 낮 12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고인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 버렸다. 이씨는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아파도 출근하는 등 결근·지각 한 번 없었던 사람”이라며 “전직만 됐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이어 “공사는 남편의 공황장애를 인정해야 한다”며 “그래야 나중에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자살한 게 아니라 병 때문에 그랬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고인은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을 유족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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