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도대체 뭘까. 생산직·기능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지금 이 나라에선 이들 노동자는 고졸 사원이라 불린다. 대졸 사원과 별개로 구분해 놓고 별도 취급을 하고 있다. 제조업이든 아니든 어느 사업장에서든 생산직·기능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고졸 사원으로 그가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지 않겠다. 그저 나는 자문할 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니 단지 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나 스스로 자문하고 있을 뿐이다.

2. 그는 이 나라에서 당당히 노동자라고 불리는 노동자다.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하며 노조를 조직했다. 어느 누구도 그가 노동자라는데 대해,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하는데 대해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노동자니까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관리직이, 조종사가, 교사가, 교수가, 공무원이 처음 노조를 조직한다고 했을 때 무슨 노조냐고 물었던 자들도 그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에겐 단지 소속이 어디냐고, 민주노총이냐 한국노총이냐고만 물었다. 사용자도, 권력자도 심지어 노조활동가도 그랬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이름은 그의 것이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법적 이름은 근로자라고 근로기준법이 정해놓고 근로자는 관리직이든, 교수든 누가 됐든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했다(제2조 제1항 제1호). 그랬어도 누구도 자신 있게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하진 못했지만 그는 당당히 노동자였다. 왜냐고,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결코 당당한 이름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될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 지위가 낮은 자, 권력이 없는 자, 갖지 못한 자의 이름이 노동자였으므로 그는 노동자로 불렸던 것이다.

3. 그를 대상으로 해서 노조는 조직됐고 노동운동은 전개됐다. 1920년대부터라면 이제 약 100년이 다 돼간다. 1980년대 중반 민주노조운동으로부터 새로 출발했다 쳐도 벌써 약 30년이다.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은 산별노조체제로 수만, 수십만의 대규모조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로 국회로 달려가고 있다. 해마다 임금인상투쟁을 하고 단체교섭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해왔다. 임금이 인상되고 고용보장하는 협약도 체결됐다. 그래봐야 조직률이 10% 안팎이고 나머지는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노동자로 남았지만. 그런데 도대체 뭘까. 이 나라에서 생산직·기능직 노동자로, 고졸 사원으로 산다는 것은 왜 이럴까.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했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고용노동부장관은 말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것을 추진하겠다고 올해 초 정부는 발표했다. 당장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의 주야 맞교대는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교대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주야 맞교대로 밤낮을 바꿔가면서 일해 온 노동자는 걱정이다.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를 지금처럼 할 수 없게 되면 어쩌나 하고, 정부 방침대로 실제로 노동시간이 단축될지 모른다고 걱정이다. 이 나라 제조업에서 일하는 그는 사무직·관리직은 노동시간 단축돼도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대로 임금 삭감이 없었는데 그는 지금까지 지급받아온 임금을 받지 못할까 걱정이다.

4.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계급은 고사하고 학력조차 뛰어넘지 못했다. 그동안 이 나라 노동운동은 분명히 생산직·기능직 노동자로 노조를 조직해서 해마다 임금인상투쟁을 해왔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 이 나라에서 노조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강한 사업장조차도 학력격차를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해 한나라당조차 학력차별금지법을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이 나라 노동운동은 마땅히 고졸 생산직·기능직과 대졸 사원의 임금 등 지금의 학력격차는 합리적인 차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철폐하겠다고 투쟁해야 했다. 고작 자녀채용시 가산점을 요구해서 신분세습이라고 비난이나 받았다. 그때 너도 나도 비정규직 처지를 말하며 더 이상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고 비판했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하나가 아니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그건 정규직과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고졸과 대졸을 나눠서 말해야만 한다. 고졸 사원으로 근무해서 도대체 몇 년을 일해야 대졸 사원과 동등해질까. 만약 당신이 몇 년, 몇 십년이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겠다. 그는 평생을 일해도 동등해질 수가 없다. 이 나라에선. 고졸은 평생 고졸이고 그는 생산직·기능직일 뿐 관리직으로 승진이 봉쇄된 채 일해야 한다. 관리직은 대졸 사원의 자리일 뿐이다. 단체협약에서 과장이든, 부장이든, 대리든 일정 직급 이상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노조 가입을 제한할 때에도 그건 대졸 사무직의 자리임은 노사교섭 대표는 누구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임금체계를 보면 그가 대졸 초임에 도달하기 위해서 최소한 십여년을 일해야 한다. 이건 그가 그 사업장에서 오래 일하면 할수록 더 격차가 벌어져서 종국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거리로 벌어진다. 그런데도 고졸 사원으로 조직된 생산직·기능직 노조가 해마다 임금인상투쟁을 해서 쟁취한 임금인상(률)이 그대로 대졸 사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니 격차는 도무지 좁혀질 수 없다. 오히려 관리직으로의 승진에 의해서 추가 급여와 보수가 지급되는 대졸 사원과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질 뿐이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라는 노동운동이 쟁취한 노동제는 그를 외면하고 서 있다. 당신은 동일 근속에 동일 노동시간이라는 조건에서 도대체 얼마의 차이가 있는지 헤아려 보았는가. 법정근로시간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이건 단순히 고졸과 대졸의 차이를 넘어서 이미 이 나라에선 신분차이 정도까지 가버린 것 아닐까.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 발표한 고졸과 대졸의 임금 격차 현황을 보면 우리의 경우 고졸 임금을 100으로 놨을 때 대졸 임금은 160으로 OECD 최고수준이었다. 동일 근속에 동일 노동시간이라는 조건에서 파악해보면 세계최고수준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이 지경인데 교대제 변경, 노동시간 단축이 이걸 외면하고서 도입하려는 것이라면 그건 이런 노동자를 짓밟는 짓이다. 대졸사무직 급여수준을 쳐다보면서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해서라도 기를 쓰고 살아온 노동자를 짓밟는 짓이다. 2010년 독일 금속노조가 타결한 임금협약을 보면 임금등급이 가장 높은 22등급의 조합원은 월급이 6천111.5유로로 한화로 약 900만원이 넘고 연봉으로 약 1억1천만원을 지급받는다.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하지 않고서 주 35시간제로 지급받는 임금수준이다. 귀족노조가 파업한다고 보도해서 시끄러웠던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가 약 30년을 근무하고서 최고의 시급을 받아도 1주 40시간 소정근로시간만 일하고서 지급받을 수 있는 월 급여는 그 절반을 훨씬 밑돌고 3분의 1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거창하게 독일 노동자와 비교할 것도 없다. 소정근로시간 대로 근무하는 사무직 대졸 사원이 약 30년을 근무해서 지급받는 급여가 얼마인지 비교해보면 이 나라에서 생산직·기능직 노동자, 고졸 사원이 지급받는 임금수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에서 학력격차는 적어도 30년의 노동운동이 무엇이었냐고 묻고 있다. 주야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로라도 전환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받아오던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된다며 걱정부터 앞세우고서 그는 노조가 무엇이었냐고 묻고 있다. 정부는 실질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큰일 아니냐고 그는 묻고 있다. 이건 대졸 노동자라고, 사무직노조라고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남 일이라 할 게 아니다. 비정규직문제가 사업장 전체 근로자의 고용문제이고 결국은 정규직의 문제일 수밖에 없듯이 생산직·기능직, 고졸 노동자의 문제는 대졸 사무직 자신의 고용 임금 등 근로조건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생산직·기능직 노동자로 조직된 노조가 투쟁해서 쟁취한 임금인상이고 고용보장이었다.

5. 아무리 가리고 덮으려 해도 노동자의 권리상태는, 노동운동의 상태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생산직·기능직 노동자의 문제, 고졸과 대졸 사원의 격차 문제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 권리상태, 노동운동 상태의 일부이다. 가려진 일부가 교대제 개편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서 드러난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가려진 덮개를 들춰 내야 한다. 노동자가 늙었다, 의식이 어떻다 탓하기 전에 자신이 덮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서 말해 줘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기에 학력 격차가 있다.

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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