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자리의 최고의 안주는‘총선’이다. 오는 4월11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진행 중인 정치권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 누가 나오고 누가 떨어졌다는 얘기가 화제다. 특정인에 쏠렸던 눈과 귀는 확장된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같은 거물들만 주인공이 아니다. 낯익은 인물도 있고, 낯선 인물도 있다. 오랜만에 도마 위에 올려놓을 인물들이 많으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술보다 수다에 집중하니 덜 취한다.

노사관계와 관련된 이들이 모이면 또 하나의 이슈가 추가된다. 정부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경영계는 활활 타도록 부채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양대 노총의 정치활동에 관련된 것인데 주로 한국노총과 민주통합당의 통합을 겨냥하고 있다.

이희범 한국경총 회장은 이를 “노조의 정치화, 정치의 노조화로 정책 편향을 심화시킨다”고 규정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가 특정정당과 통합선언을 하고 노총 위원장이 특정정당의 최고위원을 겸직하는 것은 문제”라며 “세계에서 유례없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나 경영계는 노동계의 정치활동은 존중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집권정당과 정책연합과 정책연대를 해 온 한국노총의 과거 정치활동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유독 민주통합당과 한국노총의 통합, 노조 간부의 당직 겸직에 대해서만 도마 위에 올린다. 정작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이 우려해야 할 ‘자주성 상실’까지 거론하면서 말이다. 정치가 개입돼 노사관계 자율성마저 상실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정부와 경영계가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이라는 원칙에 동의하면서 수단과 방법만 비판하는 것에 대해선 개운치 않다. 이런 비판이 합리적인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정치활동의 자유를 인정하면 수단과 방법도 그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나 경영계의 비판의 칼날이 무디게 느껴지는 이유다. 문제는 정부와 경영계의 비판이 정작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든다는 점이다. 노조와 정당이 통합하고, 노조간부가 당직을 겸직하면서까지 정치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언인가이다. 그것도 집권정당과 정책연대까지 했던 한국노총이 말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이런 얘기가 활발하지 않다. 되레 선거를 화제로 수다를 떠는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활발하다.

한 노동법학자는 이를 “개별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규율하거나 개입해 온 집단적 노사관계가 실종됐기 때문”이라며 “집단적 노사관계가 실종되니 노조가 해결책을 정치에서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은 이랬다. 우선,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복무규율을 정하는 취업규칙을 사례로 들었다. 사용자의 취업규칙 작성과 변경에 관해 노조가 개입하거 규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법원은 노조가 제동을 걸어도 사용자 손을 들어주는 추세다. 취업규칙 작성과 변경의 절차만 따질 뿐 노동자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이러니 취업규칙은 사용자 마음대로이고, 단체협약보다 취업규칙이 상위에 있다는 푸념이 나온다. 단체협약이 넓게 적용되면 좋으련만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니 이마저도 어렵다. 경영계 일각에선 노조의 역할을 노사협의회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면서 편을 들었다. 타임오프 적용과 복수노조 허용이 되레 노조활동을 위축한다는 게 노조간부들의 의견이다. 노조 상급단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에 법안상정조차 못했다. 노사정 간 고위급 대화라도 활발하게 이뤄졌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대화는 없고, 연일 상대방을 헐뜯는 얘기만 나온다. 집단적 노사관계는 사실상 무너지고 있으며, 방향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선택할 카드는 단 하나다. 정치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적 노사관계가 실종된 것은 노동계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나 경영계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적 선택을 한 노동계가 자주성을 상실했다면 심판할 주체는 정부도 경영계도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 잘못된 선택을 한 지도부를 심판하면 될 일이다. 이것이 노조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길이다. 물론 정부나 경영계가 당과 노조가 건전한 긴장관계를 갖지 않고, 의회정치와 노조활동을 구분하지 않는 것을 우려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노동계의 정치활동을 규율하는 잣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노조 간부가 당직을 겸직하든 당과 통합하든 정치적 자유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한 달도 채 안 남았다. 더 이상 노조의 정치활동 방식에 관한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노동계는 이미 화살의 시위를 당겼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집단적 노사관계의 방향을 찾고, 어떤 개선책이 필요한지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다. 노사정은 그런 논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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