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이희범)가 노동·복지정책과 관련한 정부나 정치권·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대부분 중장기적 접근을 요구하거나 반대의사를 밝혔다. 복지확대와 장시간 근로 개선은 속도 조절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재개정은 수용불가 입장을 내놓았다.

경총은 14일 이희범 회장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자료를 배포했다. 경총은 "현 정부 들어 노동관련 법·제도가 개선되고 노사관계도 안정화됐다"며 "올해 총선·대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정치세력화와 정치권의 노사관계 개입으로 혼란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사내하청 판결, 확대해석 곤란?=최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병승씨에 대해 원청이 고용한 정규직(불법파견)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총은 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은 해당 사건에 국한된 개별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내하도급이 불법이고 직접고용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경총은 오히려 “사내하도급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생산방식”이라고 맞섰다.

경총은 법·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방향이 달랐다. 사내하도급 규제가 아니라 파견업종을 확대해 불법파견 논란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경총은 여야 정당이 내놓은 비정규직 축소(정규직화)나 차별해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비정규직 축소·차별해소는 시행 대상·시기나 규모(비율)만 달랐지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등 여야 정당이 모두 내놓은 공약이다.

경총은 "비정규직 고용규제 강화는 대기업의 고용경직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청년·고령자 고용확대나 처우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규제 정책보다는 기업의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확대·노동시간단축은 속도조절?=경총은 이어 "무상급식 등 각 정당의 복지확대 공약이 포퓰리즘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값등록금·무상보육·기초노령연금 확대와 같은 복지정책이 세금인상을 초래해 국민·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총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보다 낮지만 최근 증가율은 경제성장 속도를 상회했다"며 "복지제도의 미성숙과 급격한 고령화,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시간 근로 개선에 대해서는 정부·정치권 주도의 추진을 우려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시기를 전후해 통합진보당·민주통합당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당 강령·정책에 반영했다. 새누리당도 노동부 정책을 승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총은 "규제를 통한 급격한 변화보다는 노사정 대화를 통한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생산성·임금체계·노동유연성을 함께 논의하면서 시장 자율적 단축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정치참여, 과열 양상?=노조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과열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민주통합당은 한국노총과,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과 총선공약(노동)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노조 전·현직 간부의 국회 진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경총은 "노동계의 정치참여로 노사관계가 정치화되면서 갈등과 혼란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정당은 특정 이익단체의 입장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계가 요구하는 노조법 재개정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제도가 안착화되는 가운데 법을 개정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자초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경총은 야당들이 양대 노총의 제안을 수용해 노조법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경총은 "노동계와 정치권은 법 개정보다는 제도 안착화와 노사관계 선진화에 노력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이날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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