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남
공인노무사

(대상판례/대법원 2012.2.23.선고 2010다3629판결)

초록의 봄날 새벽, 잘려진 노동자의 기타선율

콜텍 대전공장은 ‘21세기 꿈의 통기타 공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은 대표이사의 기름진 안락을 위한 노예노동으로 신음했기에 노동자들에게는 연명을 위한 절망의 공장이었다. 2006년 4월, 잘린 손가락의 선혈을 기억하며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소박하지만 절박한 구호로 노동조합이 건설됐다. 그렇게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콜텍지회 깃발은 올랐다. 단체협약 체결후 1년이 지난 2007년 4월9일 그 초록의 봄날 새벽, 기습적인 ‘폐업’ 공고문을 통해 대표이사는 ‘노조 때문에 인생 조졌다’며 탐욕의 눈빛으로 독기를 품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사수와 위장폐업 분쇄’ 투쟁의 구호를 외치며 외롭고 고단한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

고압송전탑 고공농성과 분신, 그리고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

이렇게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고등법원에서 이겼으니 대법원도 우리의 손을 들어 줄거라고 믿고 기다렸다. 그렇게 칠흑 같은 세월 속에서, 늙은 노동자들은 계룡산 길거리에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장 집 앞에서 그리고 세계 악기 쇼가 열린다는 독일·미국·일본을 오가며 온 몸으로 처절한 투쟁을 이어갔다. 고압 송전탑에 오른 이인근 지회장의 절규와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며 제 몸에 불은 놓은 콜트 이동호 조합원의 그을린 상처 속에, ‘정리해고’라는 이 땅의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합법적 살인행위는 2012년 2월23일 대법원에 의해 비호·용인되고 말았다.

같은 날 오전에는 콜트악기에 대한 정리해고 상고심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은 콜텍과 같은 판례(대법원 2004.1.15.선고 2003두11339)를 원용하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부평공장 폐쇄에 대해 해고 이후의 사정으로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함에 있어 고려대상이 아니라면서 상고를 기각했다. 콜트악기의 경우 △2006년 처음 당기순손실이 발생했을 뿐 계속해 당기순이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유동비율과 부채비율, 차입금과 이익잉여금의 규모, 신용등급 등에 비춰 재무구조가 매우 안전했다는 점 △해고 전후 직원들의 임금인상이 있었고, 정년퇴직에 의한 자연 인력감축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재판부가 달랐던 주식회사 콜텍 상고심 사건에서는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고등법원의 해고무효판결, 대법원 파기환송

콜텍의 경우 노동위원회 판정과 고등법원 판결을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노위 사건 당시 필자는 2006년 4월 콜텍지회 설립이후 주문생산량이 향상 내지 지속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중국 대련 공장에서 반제품을 들여와 대전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종의 흐름생산 구조에서 인위적으로 대련공장의 반제품 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대전공장 경영상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도 내세웠다. 부채비율 내지 당기순이익 등 법인 전체의 경영상태가 양호하다는 점, 어떠한 해고회피 노력도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지노위는 정리해고의 실체적·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대전공장이 폐쇄됐다는 것을 이유로 구제실익을 운운하며 3개월여 판정회의를 지연한 끝에 ‘위장폐업으로 볼 수 없으니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한편 고등법원은 대전공장만의 경영사정이 아닌 회사 전체의 경영사정을 종합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정리해고 법리구성을 했다. 근로기준법 제24조에 따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장래에 올 수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02.7.9.선고 2001다29452판결)를 토대로 했다. 기업전체의 경영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관해 판단해야 한다며 지노위 판정과 같이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 동안에 계속해 자본의 논리로 변용·수정된 정리해고 법리에 비교하면 타당한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대상판례(대법원)는 원심이 콜텍자본 전체의 경영사정을 기준으로 정리해고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일부 사업부문의 경영악화가 구조적인 문제 등에 기인한 것으로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고 해당 사업부문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기업 전체의 경영상황이 악화될 우려가 있는 등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인정할 수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법리 오해에 따른 심리미진을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는 장래위기에 대처할 사정?

대상판례에 따르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전체의 경영사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나, ‘일부 사업부문의 경영악화 우려 등 위기가 있다’면 해고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스스로 논리 모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기업의 유기적 실체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전일적 지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 ‘사업전체’를 기준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일부 ‘사업부문’만을 기준으로 그 필요성을 본다면 법조문의 충실한 해석일 수 없고, 지나치게 해고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근로기준법 제24조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과 기준에 대해 대법원은 지속적으로 제한에서 완화하는 입장으로 변경해 왔다. 이렇듯, 변용과정을 거친 판례를 통해 대상판례는 어떤 사업장이든 정리해고는 가능하다는 논리에 이른다. 일부 사업부문이 기업 전체의 경영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땅의 어떠한 기업내 노동자들도 잉여인력으로 정리해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의 잉여생산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정리해고 칼자루를 휘둘러도 된다는 식의 정리해고를 ‘장려’하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대상판례는 끝으로 콜텍의 경우 대전공장이 계속해 영업손실을 낸 원인이 무엇인지, 대전공장의 경영악화가 피고 전체의 경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원심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중국 대련공장의 확장과 반제품 반입량 조절, 성과급 지급 사실을 기초로 볼 때 대전공장의 영업손실이나 경영악화는 대전공장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사실이 피고(콜텍)에 의해 의도된 것으로 본다면 원심판결은 정리해고가 무효임을 거듭 판결해야 마땅할 것이다.

정리해고법 이대로 둘 것인가

정리해고는 노동자측에는 잘못이 없고 오로지 자본의 경영상 이유를 이유로 ‘해고’를 한다는 점에서 임금노동자에게는 생존권의 중대한 위협이기에 살인과 같은 것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입법화된 이래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됐고, 법원은 정리해고 요건을 지나치게 완화해 더 이상 그 해석에 기대할 가치가 없다.

한편 대량의 정리해고 사건에 대해 수없이 토론회를 개최하며 입법상 문제와 판례를 비판하나, 이 또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학자적 양심만을 내세우는 자, 진지하나 노동에 대한 내용이 없는 자들로 정리해고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여전히 정리해고법 ‘개정’을 말하나 수정주의의 논리로는 ‘노동’이 보호되지는 않는다. 자본의 논리가 반영된 노동법에서 노동은 배제될 뿐이다.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 아닌 자본에 의한 살인임을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리해고법의 개정이나 수정이 아닌 폐기를 말해야 한다. 이미 근로기준법에는 해고제한 법리 규정이 있으니 정리해고 조항의 삭제를 위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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