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지없이 어용노조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1월에 한진중공업에서 어용노조가 설립되더니, 2월에는 충북 보쉬전장에서 회사측 지원을 받는 어용노조가 만들어졌다. 보쉬전장은 조합원이 400여명에 달하는 충북지역의 대표적 금속노조 사업장이다. 그런데 연초부터 사측이 공격적으로 노조간부들에게 징계를 내리더니 2월에 아예 노골적으로 사측 지원하에 복수노조를 설립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민주노조 탄압의 특징은 노조탄압이 경영위기 때가 아니라 회복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는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나 2010년부터는 경제위기 이전 상태를 회복했다. 특히 중규모 이상의 제조업 기업들은 대부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민주노조 탄압을 통해 어용노조가 설립된 곳들 대부분도 이러한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사업장이었다. 볼보코리아·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두산인프라코어·유성기업·보쉬전장 모두 그렇다. 경영위기 시기에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이 이뤄진다는 지금까지의 통념과 다르다. 즉 단순한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먼저 재작년부터 진행된 민주노조 탄압과 어용노조 설립은 재벌들의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졌다.

두산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금속노조 탈퇴공작을 기획했다. 계열사인 두산DST·두산인프라코어(창원)·두산인프라코어(인천)·두산모트롤에서 연달아 어용노조가 설립되거나 기존 노조가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두산그룹의 두 축인 플랜트 계열(중공업·엔진)과 건설기계 관련 사업장(연혁으로 보면 두산이 인수한 옛 대우중공업 관련 사업장들) 모두를 손본 것이다. 두산그룹의 건설기계 부문은 2007년 말 미국 소형 굴삭기업체 밥캣을 인수하며 2008~2009년 심각한 재무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2010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며 위기를 벗어났다. 두산자본은 이 잠깐의 위기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협박했고 이미 사측에 의해 잠식당한 현장은 쉽게 금속노조 탈퇴, 어용노조 설립으로 기울었다.

현대차는 1차 부품사를 상대로 금속노조 와해공작을 폈다. 발레오전장·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에서는 마치 각본이 있는 것처럼 금속노조의 지회가 쟁의 준비를 하자 직장폐쇄·간부 해고·어용노조 설립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현대차는 발레오전장지회가 교섭을 시작하던 시점부터 직장폐쇄와 생산중단까지 염두에 두고 발레오의 중국·프랑스 법인을 통한 부품수급을 계획했다. 상신브레이크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유성기업의 경우 생산중단으로 인한 손실까지 납품단가를 크게 올려 주는 방식으로 보상했다. 현대차의 지원에 힘입어 이들 기업들은 예전과 달리 매우 공격적으로 금속노조 와해공작을 폈고, 발레오전장과 상신브레이크에서는 금속노조가 현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들 기업들은 아예 현대차의 필요로 어용노조를 만든 사례다.

다음으로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노조탄압과 어용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2010년 이후 금속노조 탈퇴 사업장 중 20% 가까이가 외투기업들이다. 창원 볼보코리아·경주 발레오만도·이너지·인천 알씨이코리아·충북 보쉬전장 등이 대표적이다. 금속노조 탈퇴가 아니더라도 3M·파카한일유압·포레시아·위니아만도·보워터코리아·발레오공조 등 2009년 이후 금속노조 투쟁 사업장 중 절반 이상이 외투기업들일 정도로 외투기업들의 공격적 노조탄압이 심했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외투기업들이 어용노조 설립에 사용한 가장 큰 무기는 공장 철수였다. 국제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던 시기, 금속노조 탈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물량을 줄이고 공장을 철수하겠다는 협박이 연일 이어졌다. 물론 노동자들의 불안을 이용한 심리전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봐도 2010년~2011년 이들 사업장에서 매출이 준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 크게 늘었다. 마치 노조 때문에 물량이 줄고 매출이 줄어들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뒤로는 이미 주문을 상당히 많이 확보해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 기업들에서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경영위기는커녕 주주들에 대한 배당잔치, 임원과 노조파괴에 공을 세운 관리직들에 대한 급여인상 잔치가 이어졌다.

이상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실 금속노조 탈퇴·어용노조 설립은 자본이 핑계 대기 좋아하는 ‘경영상의 이유’와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어용노조 설립은 매출이 급증하던 시기에 이뤄졌고, 금속노조 때문에 회사운영을 못하겠다고 난리를 친 자본 중에 실제 회사 운영을 그만둔 예도 없었다.

물론 분명한 하나는 있다. 금속노조 탈퇴 이후 자본의 이익은 늘었고, 노동의 몫은 줄었다는 것이다. 상신브레이크는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이 3% 하락했고, 대림자동차와 발레오전장은 각각 6% 하락했다. 반면에 노동강도는 빠르게 상승했다. 유성기업의 경우 시간당 생산량이 14% 가까이 증가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협박에 쫄아서는 안 된다. 민주노조를 지킨다고 회사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이 심각한 고용위기에 내몰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조가 없어지면 임금·노동조건은 가시적으로 후퇴한다. 민주노조를 지켜야만 하는 이유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