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출근하기 위해서는 이 마을버스를 꼭 타야 한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슬슬 짜증이 드러나는 표정들을 짓는다. 15분째 버스가 오지 않고 있다. 인내가 한계에 달해 누군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찰나, 꼭 그만큼의 인내를 시험하기라도 하듯이 정류장 앞으로 버스가 ‘알겠으니 어서 타라’는 몸짓으로 급히 와 선다. 다들 운전사를 힐끔 보지만 선뜻 왜 이리 늦었냐는 말은 하지 못한다. ‘마을’이라는 지금은 낯선 단어가 버스 앞에 붙어서인가, 사람들은 묵묵히 창밖을 보기만 한다. 왜 이리 늦게 다니느냐고 민원이라도 넣어 볼까 하는 표정이다. 그런 표정들을 보며 나는 ‘민원 두세 번이면 징계를 받고 며칠간 출근 못할지도 몰라요’라고 그냥 속으로 눙친다.

나도 맨 뒷자리에 앉는다. 마을버스의 맨 뒤 오른쪽 구석자리. 햇살을 받으며 출근하면 기분 좋은 그런 자리. 과속방지턱을 빨리 넘으면 가장 출렁이는 자리. 좀 급했는지 역시나 속도를 충분하게 줄이지 않고 과속방지턱을 넘는다. 내 몸이 출렁이는 건 괜찮은데 바퀴를 받치고 있는 스프링, 그 스프링이 출렁이는 건 괜찮지 않다.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부러지기라도 하면, 널 소중히 다루고 싶어 하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왜 이리 운전을 거칠게 하냐”며 회사에서 징계를 받고 며칠 동안 운전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단다. 그러니, 힘들어도 좀 오래 버티렴.

버스가 출렁이는 순간, 아주머니 한 분이 뒷문 쪽에 세워진 봉에 어깨를 부딪쳤다. “아야” 소리가 나자 운전기사분이 괜찮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그냥 내린다. 아저씨, 제발 연락처 드리고 꼭 병원에 가 보시라고 물어봐 주세요. 아저씨가 혹시라도 민주노총 조합원이시라면 더욱이요. 어느 곳에선 회사에서 일부러 사람을 시켜 넘어지게도 한답니다. 그리고 치료비용은 본인이 부담하게 하고 징계도 한다고 해요. 그러니, 꼭 지금 물어보세요.

그냥 출발한다. 급한 건 여전하다. 차가 그리 많지 않다고 신호 몇 개는 예사로 위반한다. 종일 기어를 변속하고 운전을 하느라 왠지 더 딱딱해 보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신호위반을 얼마나 하는지 세어 본다. 여섯 번, 벌점 90점, 해고….

무전기에서는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지시가 내려오고 운전하랴, 무전내용 신경 쓰랴, 내가 다 정신이 없다. 카드를 찍고 내린다. 아저씨도 담배 하나 입에 물고, 버스에서 내린다. 하루의 대부분을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삶. 허공의 삶. 언제든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삶.

그렇게 사무실에 들어와 상담을 하고 사건을 맡고, 하루를 보낸다.

지난해 7월1일 이후 서울·경기지역 20여개 사업장에서(물론 전국적으로는 더욱 많이) 기존의 한국노총을 탈퇴하거나 새로이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공공운수노조 산하 민주버스본부의 분회를 만들었다. 수십 년간 버스업계에서는 한국노총 산하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소위 자노련만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더 오래 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부분이 10명 미만의 조합원으로밖에 구성되지 않은, 또 다른 뜻을 가진 노조에게 부디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제발, 배차시간에 쫓겨 위법인 줄 알면서도 행할 수밖에 없는 신호위반 내용이 담긴 CCTV 자료를 경찰에 넘기면서까지 벌점과 벌금을 받게 해서 해고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바라는 것이 무리인 줄은 안다. 투쟁하지 않고는 내놓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다만 상식이, 보통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바람에서 읊조려 본다.

일을 마치고 늦은 밤, 다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늦는다. 늦게 올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슬며시 짜증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좀 더 기다리라고 말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