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라는 이슈가 지난해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덕택이다. 무분별한 정리해고에 관한 국민적 공분을 모았던 희망버스는 성공했다. 생산기지와 물량을 해외로 이전하고, 배당잔치를 했던 한진중공업은 철퇴를 맞았다. 그렇다면 희망버스가 전국을 강타한 지난해 정리해고 바람은 잦아들었을까. 한진중공업에서만 희망의 씨앗을 틔웠을 뿐 현실은 정반대였다.

지난해 정리해고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는 10만2천명에 달했다. 이는 고용보험 피보험자 자격을 비자발적으로 상실한 노동자 중 정리해고자의 규모인데 전년보다 30%나 늘어났다. 정리해고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인원이 12만3천265명에 달했던 지난 98년 외환위기 때에 근접한 것이다. 경영상의 이유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 했던 제 2의, 제 3의 한진중공업이 지난해 많았다는 얘기다.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이들은 또 있다. 폐업·도산·공사 중단, 기타 사정에 의한 비자발적으로 퇴직한 이들이다.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를 포함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자리를 잃은 인원만 무려 1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질병·부상·노령 등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는 이들은 줄고, 경영상 이유라거나 회사가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관두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일각에선 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 건설시장 침체로 인해 폐업·도산 업체가 많아 지난해 정리해고가 늘었다고 분석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적어도 폐업·도산으로 인한 해고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는 달리 봐야 한다. 대법의 판례를 보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 요건은 4가지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 노력, 대상자의 공정한 선정,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법원이 이런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기타 제조업체인 콜트와 콜텍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봐도 그렇다. 같은 정리해고 사건과 관련된 소송 당사자인 콜트(모회사)의 노동자는 승소하고, 콜텍(자회사)의 노동자는 패소했다. 같은 사건임에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달랐던 셈이다.

이렇듯 법원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아직 닥치지 않은 경영위기를 예방하겠다고 정리해고를 강행한 기업들도 면죄부를 받고 있다. 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추세이니 정리해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일부 기업이 경영상 이유도 아닌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자 정리해고를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계에선 노조 전임자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KEC의 정리해고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우리와 달리 외국에선 정리해고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독일·프랑스는 배치전환·재교육·조업단축의 시행 등의 해고회피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정리해고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또 사용자로 하여금 고용유지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정리해고의 구체적 요건과 절차·방법 등을 단체협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도 노동관계법으로 정리해고를 제한하려는 추세다. 이렇듯 외국에선 해고의 절차와 요건도 엄격할 뿐만 아니라 해고자를 위한 재취업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동관계법에 규정된 정리해고 요건은 느슨할 뿐만 아니라 법원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행정당국이 고용유지지원금이나 전직지원장려금 제도를 활용해 집단해고를 예방하려 하나 실제론 유명무실한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정리해고제를 손질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근 여야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노동공약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정리해고 제도개선과 관련해서는 야권의 공약이 눈길을 끈다. 한국노총과 민주통합당은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노동공약에 포함시켰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긴박한 경영상 이유를 제외한 집단해고 제한 △해고회피 노력 의무화 △정리해고의 절차적 요건 신설 △해고회피 노력과 협의결과 미흡할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고 효력을 2개월 범위에서 일시 정지 △해고자에 대한 구제조치 명문화 등이다.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도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를 노동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정리해고와 관련한 갈등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희망버스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 종점에 도착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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