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농협중앙회
농협중앙회가 지난 2일 창립 51년 만에 지주회사 체계로 재편됐다. 은행·보험사업 중심인 농협금융지주회사와 농산물 판매·유통업무를 하는 농협경제지주회사로 분리된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두 지주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은 다른 재무구조와 사업추진 방식을 갖는 엄연히 다른 몸이 됐다.

농협중앙회는 “새 농협의 출범으로 경제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까지 총사업량(매출액) 44조원에 당기순이익 2천3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신용부문 역시 2020년까지 총자산 420조원 규모의 글로벌 협동조합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언론들도 ‘50년 만의 개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여기저기서 축포를 터뜨렸다. 난데없이 뒤바뀐 환경에서 농협 노동자들과 사업 시혜의 대상이라는 농민들은 신경분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농협중앙회 신경분리를 노동자와 농민의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급하게 진행한 신경분리, 사라진 과장들

5일 서울시내 한 농협 영업점. 이달 2일 신경분리가 되면서 ‘NH농협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간판만 바뀐 것은 아니다. 일선 영업점의 허리 역할인 과장(4급)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영업점 직원들은 늘어난 업무로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과장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농협 관계자는 “농협중앙회가 급하게 신경분리를 추진하면서 부족한 일손을 일선에서 차출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신경분리로 조직구조가 다분화하면서 이를 운영할 중간 관리자들이 필요하게 됐는데, 그 인력을 일선 과장들로 채웠기 때문이다.

영업현장의 인력을 끌어쓰다 보니 남은 사람들의 업무량 증가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서울지역에서 신경분리를 전후해 농협중앙회로 불려간 과장들만 40~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은행지점 근무자인 최아무개(28)씨는 “조직개편과 함께 신규고객 유치 지시까지 내려져 눈코 뜰 새가 없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중간 관리자까지 중앙회로 불려나가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업무 과부하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올해 1천340명을 새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는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력을 채용하면 업무강도가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익성 중심 조직개편 … 불안해진 고용

하지만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신경분리로 발생한 농협의 채무가 11조원이나 되고, 수익을 중시하는 지주회사의 특성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업무 가중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농협중앙회는 당초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데 27조4천억원(정부 예측치 25조4천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그런데 농협이 보유한 자본금은 15조2천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현물로 지원하기로 한 1조원을 빼더라도 무려 11조원이 부족하다. 이러한 부담이 결국 농협중앙회 직원의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우려다.

빚을 안고 시작한 사업인 만큼 수익성에 집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여의치 않을 경우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지주사 전환의 핵심은 실적을 높이기 위해 무한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고용규모가 유지될지라도 기존 직원들의 업무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과 중심의 경영구조 개편이 이뤄지면서 협동조합 중심의 일 체계에 익숙했던 기존 직원이 소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NH생명보험과 NH손해보험으로 분리된 옛 농협공제사업부는 신경분리를 앞두고 지난 2010년부터 실력이 뛰어난 시중 보험사 직원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상품 개발·판매와 같은 업무가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맡겨지고 기존 직원은 후선으로 밀려난 상태다.

한 농협 관계자는 “농민들을 위한 병충해작물보험 같은 것을 개발·판매하던 직원들이 수익성 중심으로 뒤바뀐 조직분위기를 낯설어하고 있다”며 “2010년 한 해에만 기존 직원의 60% 이상이 다른 부서로 전출을 신청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농민을 위한 신경분리라더니…

신경분리는 당초 경제사업 활성화가 목표였다. 그동안 농협중앙회는 금융부문 수익으로 경제사업 적자를 메워 왔다. 이에 따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치우침 없는 수익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농협중앙회의 목표였다.

그러나 개편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사라져 버렸다. 신경분리 과정에서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닌 ‘농협 주식회사’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비료생산업체 남해화학의 가격담합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최대주주인 남해화학은 지난 95년부터 2010년까지 농협중앙회와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가 발주한 화학비료 입찰에서 다른 업체와 사전에 투찰가격을 담합했다가 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502억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최근 비료값 폭등으로 농민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도 농협중앙회 자회사가 수익성을 위해 가격담합을 한 것이다. 남해화학은 신경분리 과정에서 농협경제지주로 편제됐다. 민경신 전국농협노조 위원장은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한 것은 협동조합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내던진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며 “수익성이 중시되는 지주회사 체계가 강화되면 농민의 이익과 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 위원장은 “남해화학 사건처럼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비료값부터 올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수도 있다”며 “농협이 농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반발했다.

"주주 아닌 회원들에게 의결권 줘야"

정부의 갈팡질팡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2007년 농협법을 개정하면서 신경분리 시점을 2017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또다시 법을 바꿔 시행시점을 5년이나 앞당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는 신경분리 안착화를 위해 여야 합의를 통해 2조원을 현물출자하고 농협이 발행한 금융채권을 연기금을 통해 3조원어치 사들이기로 했다. 금융채권에 대한 이자는 정부가 보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2월 여야 합의를 뒤집고 현물출자 규모를 1조원으로 줄였다. 대신 농협금융채권에 대한 이자보전을 3조원에서 4조원으로 늘렸다. 허권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 위원장은 “정부가 말을 바꾸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회에서도 농협법 재개정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며 “정부는 기존 약속을 지키고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지주회사보다는 회원들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연합회 혹은 협동조합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상환 교수는 “당초 의도와 달리 신용사업의 역할이 더 커지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며 “의결권 행사 주체를 회원들로 변경해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불거질 폐단을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덴마크와 네덜란드처럼 국가가 축산업 같은 특정 분야에 독점권을 부여하면 경제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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