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

2011년 11월1일. 당시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13703)에 대한 무관심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개정안의 핵심은 상식적인 법조문 하나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그 내용은 노동자가 업무상질병에 걸린 경우 '업무수행 과정에서 건강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된 경력을 증명하면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근로복지공단이 '위험요인이 없거나 있더라도 근로기간 및 업무환경에 비추어 유발되지 않는 사실, 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의학적 사실'을 입증할 경우 산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현행 산재법에서는 노동자의 입증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판례상 노동자의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대법원 2008.1.31 선고 2006두8204 판결 등 참조).

개정안에 대한 노동부 및 환노위 전문위원의 검토의견을 보면 "근로자는 요양신청서 제출을 통해 주장만 하면 공단에서 알아서 다 조사하고 증명한다, 소송을 제기할 경우 입증책임이 문제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상당히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노무사들은 왜 사건을 수임해서 머리 아파하는가.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 직업성 암 사건의 업무기인성 입증(최초 신청을 포함한)은 상당한 기간과 전문적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조사 및 증명 책임을 근로자에게 분배해서 더 부담이 된다'는 인식은 현재 증명책임의 과중한 부담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부와 환노위 전문위원의 의견이 법원판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업무상질병은 그것이 업무상부상에 기인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완만하고 계속적인 위험원인의 작용으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피재자인 근로자측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곤란한 경우가 많은 점"을 판시한 바 있다(2000.3.10 선고, 대법 99두11233 판결 참조).

뿐만 아니라 직업성 암 사건에서 법원(서울고등법원 2009.12.2 선고 2009누8849판결, 대법원 2010.4.29 선고 2010두283 심리불속행 기각)은 이러한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시한 바 있다. 즉 작업현장의 발병원인물질과 업무상재해(부비동암) 사건에서 "발병원인물질의 생산과정이나 구성성분, 인체에 미치는 영향, 유해성 등에 관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므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로서는 그와 관련된 특수한 인과관계를 과학적,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점"을 근거로 사업주 및 국가가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조사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업무환경에서 문제가 된 물질이 발병원인물질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업무수행과정에서 그와 같은 발병원인물질에 노출된 점"을 증명하고, 사업주 및 국가가 "발병원인물질이 인체에 전혀 무해한 점, 그 질병이 발병원인물질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 점"을 입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사업주나 국가의 입증이 없을 경우 "그 물질에 발병원인이 존재하며 그로 인하여 업무상재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사회보험제도의 목적 및 사회형평의 관념에 맞는다"라고 판시했다.

결국 개정안은 이미 판례 법리에서 확인된 사항에 대한 상식적 요청일 뿐이며 그 이상도 아니다. 최소한 법원에서 판시한 정도의 수준에서 증명책임을 분배시키는 개정안은 법리적 타당성을 가진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노동부의 안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