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1. 판결이 선고됐다. 감격했다.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라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만세를 불렀다. 2년을 초과해서 근무한 노동자는 원청사업주의 근로자라고 확정판결했다. 원고 최병승만 현대자동차 근로자가 됐다고 감격한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감격했다. 원고 최병승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만 만세를 불렀던 것이 아니다. 금속노조·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만세를 불렀다. 2012년 2월23일 ‘대법원의 날’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는 파견근로라는 대법원 판결에 우리는 감격해서 만세를 불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날이 왔다는 것인가. 돌아가 보자.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온 것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지금 이 나라 노동자의 감격과 이 나라 노동운동의 만세의 의미를 제대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2. 대법원은 “(사내하청업체인) 예성기업에 입사한 2002년 3월13일부터 2년이 경과한 이후 계속하여 현대자동차울산공장에게 파견되어 사용됨으로써 2004년 3월13일부터 사용사업주인 현대자동차(주)와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하였다”고 판결했다. 원고 최병승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로 2년을 초과해서 근무했으니 법원은 구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2006년 12월21일 법률 제80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사용사업주 현대자동차(주)가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한 규정(제6조 제3항 본문)에 의해서 현대자동차(주)의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 파견법은 2006년 12월21일 개정됐다. 지금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사업주는 그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라고 규정하고 있다(현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그러면 뭔가. 지금이라면 원고 최병승은 아직 현대자동차(주) 근로자가 아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도 현대자동차(주)가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무를 이행해야만 현대자동차(주) 근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법원의 날에 승소판결을 받고도 원고 최병승은 완전히 감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법원의 날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대법원판결에 대해 이 나라 사내하청 노동자는 완전히 감격해서는 안 된다. 고용간주조항이 고용의무조항으로 2006년 개악됐다.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 이바지하겠다는 파견법이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 덜 이바지하는 것으로 2006년 12월 개악됐다. 그래서 이 개정된 파견법이 시행된 2007년 7월1일부터는 더 이상 현대자동차(주) 근로자로 인정될 수가 없다. 단지 현대자동차(주)에게 고용의무를 이행하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2003년부터 추진된 노무현 정권의 노사관계 선진화방안-로드맵이 2006년 12월 말 노동법개정에 의해 마무리될 즘 이렇게 파견법의 고용간주도 고용의무로 개악됐다. 그러니 이걸 저지하지 못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이번 대법원의 날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대법원 판결에 대해 그저 만세를 불러서는 안됐었다. 당시 파견법을 개악한 정치세력을 비난하고 개악된 파견법을 개정하기 위한 결의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야 했다. 그저 사내하청 근로에 대한 실태조사만으론 이제는 2년 초과해 계속 근로한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되지 않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읽고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이제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봐야 한다. 이렇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금 이 나라 노동자가 마냥 감격하고 이 나라 노동운동이 그저 만세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읽다보면 파견법을 개악한 정치세력과 개악을 저지하지 못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보인다.

3. 대법원은 원고 최병승은 파견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이 나라에서 근로자파견사업은 1998년 2월20일 제정된 파견법으로 허용됐다. 이에 따라 파견업체 소속으로 채용돼서 사용사업주를 위해 근로하는 파견근로자가 적법하게 태어났다. 이렇게 파견법 제정으로 근로자 파견사업과 그에 따른 파견근로자를 이 나라의 법제도로 도입한 것이다. 만약 파견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근로하는 원고 최병승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시점부터 이미 현대자동차(주) 근로자일 수 있었다. 파견법 때문에 구파견법에 의해서 2년 초과해서 계속 근무했으므로 현대자동차(주)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대법원은 판결한 것이다. 그러니 파견법은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 이바지하기 위한 법률일 순 있어도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이바지하기 위한 법률일 수 없다. 근로자 파견사업을 허용함으로써 근로자는 파견사업자의 근로자로서 사용사업주를 위해 근로하는 처지가 됐다. 파견법에 의해 근로자를 자신의 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로서 노동법상 책임은 부담하지 않게 됐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자가 임금·고용 등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는 법이다.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노동법령은 이것을 전제로 서 있다. 그런데도 파견법이 근로자 파견사업의 허용을 위해서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이바지하는 노동법 질서를 무너뜨렸다. 98년 2월 이 나라 노동자의 고용안정이 파견법 제정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무너졌다. 당초 이번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사건에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인 안기호도 원고로서 부당해고를 다투고 있었다. 그런데 2010년 7월 대법원 판결에서 원고 안기호는 2년 초과해서 계속 근무하지 않았다고, 구파견법에 의해서 고용간주되지 않는다고 현대자동차(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파견근로라고 인정했음에도 2년이 지나지 않았다고 원고 안기호는 이 나라의 법과 법원으로부터 구제받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대법원 판결에 원고 최병승이 감격했다 해도 원고 안기호는 감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원고 최병승이 감격을 하더라도 이 나라 노동자는 감격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고용안정을 무너뜨린 파견법 제정에 분노할 수 있어야 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법상 파견근로라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금속노조·민주노총은 그저 만세를 불러서는 안 된다. 이 나라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무너뜨린 파견법에 분노해야 했다. 파견법이 이 나라에서 제정된 14년 전 이 나라 노동운동의 무기력에 분노해야 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마땅히 98년 2월20일 파견법 제정에 관여했던 정치세력에 향해져야 한다. 당시는 98년 2월25일 취임식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를 통해서 사실상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였고 공식적으론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였다. 이렇게 이번 대법원 판결문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파견법을 제정한 정치세력과 그 제정을 막지 못한 자신을 읽어야 한다.

4. 2012년 2월23일 ‘대법원의 날’에 우리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는 파견근로라는 대법원판결에 감격해서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이 나라 노동자들이 온전히 감격해서 부를 만세가 아니었다. 2007월 7월1일 이전 구파견법이 적용되던 원고 최병승의 감격이고 만세인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감격해서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날이 왔다는 것인가’ 하고 돌아가 봤다. 그랬더니 감격은 사라지고 지금 파견법의 문제만 드러났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날이 왔다는 것인가’. 파견법을 제정해서 근로자파견을 사업으로 허용해서 사용자에게 노동법상 책임의 부담을 면하게 해주고 노동자를 파견근로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 파견법을 개악해서 2년 초과해서 계속 사용해도 고용간주되지 않고 고용의무되는 것으로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저해했다. 98년 2월 제정해서 김대중 정권에서 시행했고, 2006월 12월 노무현 정권은 개악했다. 파견법의 제정의 날에 이 나라 노동자는 아무도 감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견법에 따라서 고용간주된다는 이번 대법원판결에는 이 나라 노동자 모두가 감격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이번 판결을 읽고서 사용자에게 파견법을 지키라고 주장할 것이다. 14년의 시간이 파견법을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고 읽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만약 노동자가 이번 대법원 판결에 감격하고 사용자에게 파견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이번 판결에 감격하고 실태조사해서 사용자에게 파견법을 지키라 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파견법의 개정의 날에는 이 나라 노동운동은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번 대법원판결에 이 나라 노동운동은 만세를 불렀다. 5년여의 시간이 지나 개정 파견법이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고 인식하게 됐다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법원판결에 의해서도 파견에 해당해도 고용간주되지 못하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문제가 남고, 아무리 실태조사를 철저히 해도 이들 문제는 이번 판결법리로는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기자회견하고 그래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이 나라 노동운동이 나설 것이라고 결의했어야 했다. 이번 대법원의 날은 이 나라 노동자의 날은 아니었다. 그건 구파견법의 날이었다. 그것도 2년 초과해서 계속 근로한 근로자만 고용간주된다는 구파견법의 날이었다. 그러니 노동자가 마냥 감격하고 노동운동이 그저 만세를 불러서는 파견법 세상은 이번 대법원판결 선고 뒤 2년을 초과해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는 아무리 야권연대로 총선·대선 승리의 함성을 외쳐대도 파견법 세상은 계속된다. 오직 파견근로가 철폐되는 날이 노동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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