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게 어제(23일)는 '대법원의 날'이었다. 판결에 따라 웃고, 우는 하루였다.

대법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부당해고와 콜트악기 정리해고 사건의 마침표를 찍었다. 예상대로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0년 7월22일 대법이 현대차 사내하청 부당해고 사건의 하급심 결정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낸 지 1년7개월 만이다. 소송 당사자인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씨는 오랜 만에 웃었다. 지난 2005년 법정싸움을 시작한 후 7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정리해고를 강행한 콜트악기에 대해서도 5년여 만에 대법 판결이 내려졌다. 생계 곤란은 물론 가족까지 등지면서 가시밭길을 걸어 온 콜트 노동자들에겐 그야말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은 명쾌했다. 사내하청을 남용하는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에 철퇴를 내렸다.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내린 데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자동차 조립·생산작업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흐름생산 공정으로, 독립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과 거리가 멀다고 봤다. 원청업체에 배치된 하청업체의 반장·직장 같은 이른바 ‘현장대리인’의 지휘·감독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지휘·감독권을 가진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것이다. 결국 대법은 현대차를 불법파견 사업장이라고 규정한 셈이다. 이로써 사내하청 해고자인 최병승씨는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첫 사례가 됐다.

무분별한 기업들의 정리해고에도 경종을 울렸다. 대법은 기타 제조업체인 콜트악기가 한 해를 제외하곤 흑자를 냈고, 긴급한 경영상의 요건을 갖추지 않아 부당한 정리해고를 했다고 판결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급심도 ‘경영위기 없는 콜트악기의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이 이를 최종 확인해 준 셈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법은 콜트의 자회사인 콜텍의 해고자가 제기한 정리해고 구제신청은 원고 승소를 결정한 하급심 결정을 파기 환송했다. 기타 제조업체인 인천 부평의 콜트와 자회사인 대전의 콜텍은 지난 2004년 4월과 7월에 정리해고를 강행한 후 사업장을 폐업신고 했다. 그 뒤 회사측은 공장을 중국 등으로 이전했다. 세계 기타시장 점유율이 20~30%에 달하는 회사가 공장이전을 위해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이라는 꼼수를 부린 셈이다. 이런데도 모회사(콜트)와 자회사(콜텍)의 판결이 엇갈리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콜텍 노동자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어찌됐든 대법이 내린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차 사내하청 부당해고 판결은 소송 당사자였던 최병승씨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과 금속노조가 제기한 ‘현대차 사내하청 집단소송’에 영향을 준다. 두 소송에 참가한 사내하청 노동자만 2천여명에 이른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8천명,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3천명에 달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국내 300명 이상 사업장 10곳 중 4곳이 사내하도급을 활용한다. 사내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만 32만5천932명이다. 통계만 보더라도 대법의 판결이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철강·전자 등 사내하청을 활용해 온 기업들의 관행이 수술대에 올랐다는 얘기다. 먼저 당사자인 현대차부터 솔선수범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법원 판결을 빌미로 미적거렸던 과거와 결별하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적극 나서라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기업의 사내하청 남용을 억제하는 제도를 만드는 데 서둘러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무분별한 정리해고는 더 이상 용인해선 안 된다. 콜트 사례와 같이 기업의 전가보도가 된 정리해고는 그 실행 요건을 더욱 엄격하고 명확하게 해야 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두고 대법의 재판부마다 의견이 달랐던 콜트·콜텍과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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