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최종 판결이 나온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정몽구 처벌', '간접고용철폐' 등 문구가 적힌 풍선을 띄우고 있다. 정기훈 기자


“상고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23일 오후 2시30분 대법원 1호 법정. 판사의 선고는 무미건조했다. 이렇게 짧은 선고가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고용한 진짜 사용자가 누구냐를 둘러싼 진실게임에서 법원은 “현대차가 진짜 사용자”라고 답했다.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법정으로 가는 검문게이트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사건의 결심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 저마다 귀를 세우고 판사의 선고에 집중했다. 선고는 짧았다. 저마다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1만2천여명에 달하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중 이날 판결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은 2천명 정도다. 옛 파견법 ‘고용의제’(원청업체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조항의 적용을 받는 2005년 7월1일 이전 입사자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과 정규직 대비 임금 차액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최근 올해 안으로 1천400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채용을 늘려 장시간 근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당장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신규채용하라”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할 생각이 아니라면, 판결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고용의제 대상자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현대차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판결문이 나오면, 그에 따른 합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어떤 ‘합리적 조치’를 택할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배 때문에 법원에 못 나온 소송 주인공

승소를 자축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대법원 정문 앞. ‘역전의 용사’들이 모였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당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그 사이 노조는 만신창이가 됐다. 1천200명에 육박하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했다. 이들을 해고한 주체가 현대차냐 하청업체냐를 둘러싼 공방은 현재 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진짜 사용자 찾기’는 끝도 없이 계속된다.

그런데 이날의 주인공이 눈에 띄지 않았다. 소송의 당사자인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씨는 법원에 오지 못했다. 2010년 울산1공장 점거파업을 주동한 혐의로 현재 수배 상태이기 때문이다. 김정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최병승 조합원을 비롯해 노조활동을 이유로 구속·수배된 조합원들에게 오늘 대법원의 판결은 큰 힘이 될 것”이라며 “2005년 9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2공장 옥상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류기혁 열사도 오늘의 결과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면적인 사내하청 실태조사 진행해야"

고용노동부가 2010년에 300인 이상 기업 1천93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내하도급 활용 현황’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41.2%가 사내하도급을 활용하고 있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32만6천명(전체 근로자의 24.6%)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조선 61.3%, 철강 43.7%, 화학 28.8%, 기계·금속 19.7%, 자동차 16.3%. 전기·전자 14.1%였다.

이 중 도급으로 위장된 불법파견 사업장이 얼마나 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각 단계마다 인력파견업체들이 개입해 노골적인 ‘사람장사’를 벌이고 있기 대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업체에 대한 단속은 느슨하기만 하다. 이날 대법원을 찾은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불법파견·위장도급으로 대표되는 기업들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남용 관행에 법원이 마지막 브레이크를 걸었다”며 “정부는 모든 사내하청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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