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는 노총 간부가 당직을 겸한 사례가 없다고요? 그건 사기예요, 사기. 자 이 사진을 한번 보시죠.”

이용득(59·사진) 한국노총 위원장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확대해 내밀었다. 스웨덴 사민당 홍보책자의 일부를 사진으로 찍어 둔 것이다. 사민당 주요 당직자들의 사진과 경력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거기에는 당 집행위원회의 일원이자 노조연합 의장(President of the Trade Union Confederation)이라는 부연설명이 달려 있었다.

“하는 김에 한마디 더 하죠. 독일 사민당에서 23년간 최장수 당의장을 역임한 빌리 브란트 제4대 독일연방공화국 총리는 제지·언론노조 위원장을 겸직했습니다. 이 내용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색이 가능한 위키백과에 올라와 있는 정보예요. 위키백과 검색 주소도 알려 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도 이채필 장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일이죠.”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이 이 위원장을 겨냥해 제기한 ‘노총 간부 당직겸직 논란’에 대해 불쾌한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장관의 언행이 노골적인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노총 출신 중 현직을 유지하면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사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유독 내가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직을 맡았다는 사실만을 꼬집어 비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며 “몰상식의 극치”라고 날을 세웠다.

"장관 트집잡기, 공직자 중립의무 위반"

- 이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겸직을 두고 이채필 장관이 문제를 삼았다. 장관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판단하나.

“내가 지난해 1월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되고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취임식을 했는데 이 장관이 불참했다. 노동부는 한국노총과의 파트너십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러면서 길들이기에 나섰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옛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 참여하면서 정치세력을 확장해 나가니, 다급해진 것이다. 현 정권 들어 고속 승진한 이 장관이 충성심을 발휘할 타이밍이 된 셈이다. 우리나라 노정관계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개탄스럽다.”

- 한국노총의 정치활동에 대해 노동부는 국고 지원 중단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은 97년 민주당과 정책연합을 했고, 2004년에는 녹색사민당이라는 독자정당을 창당했다. 2008년에는 현 정권과 정책연대를 체결했다. 하지만 한 번도 국고 지원 중단과 같은 정부 차원의 방해나 압박은 없었다. 현실화된다면 노총의 정당한 정치행위를 탄압하기 위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인 셈이다. 장관의 트집잡기는 공직자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에도 위배된다.”

-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위원장의 당직겸직과 관련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최고위원은 국회의원과 다르다. 당비를 내면서 100% 무료로 봉사하는 자리다. 왜 그런 자리에 갔느냐. 조합원들의 대변자인 내가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최고위원직에 간 것을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최고위원은 권력을 갖는 자리도 아니고, 커피값 한 번 받는 자리가 아니다.

공식 비난이 아닌 비공식 비난을 하는 사람은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한국노총 산하 산별연맹 위원장이나 임원 중에 현직을 유지하면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활동한 이가 적지 않다. 그중 상당수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한나라당은 되고 민주통합당은 안 된다는 것인가. 상식에 맞지 않는 얘기다.”

▲ 이용득 위원장이 스마트폰으로 스웨덴 사민당의 홍보책자를 보여주면서 노조 대표자의 정당 겸직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한국노총 식 계급정치와 '박카스'

- 올해 신년사에서 계급정치를 강조했다. 한국노총 식 계급정치는 어떤 모습인가.

“지금 정치권은 관료 출신, 법조인 출신, 학자 출신이 나눠먹고 있다. 이들은 경제지식이 풍부할지 몰라도, 실물경제를 피부로 느끼는 정도는 노동자를 따라올 수 없다. 노동자와 서민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한국노총의 계급정치다.

박카스를 슈퍼마켓에서 팔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을 보자. 애매하다. 관료·법조인·학자 출신 정치가들은 우왕좌왕한다. 왜냐면 자기 지역구에 힘 있는 약사가 있으면 ‘팔면 안 된다’고 할 것이고, 자기 지역구에 소상공인협의회 같은 단체가 있다면 ‘팔아야 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애정남’이 필요한 애매한 정치는 계급정치가 아니다. 우리 사회 99%를 구성하는 노동자와 서민의 눈으로 보면 답은 나와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의 편의성을 높이려면 슈퍼마켓에서도 박카스를 팔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계급정치를 말하니 당내 인사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 거냐’며 경계하더라. 하지만 나는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노동자와 서민이 중심에 서는 정치의 변화와 개혁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 계급정치도 국회에 의석이 있어야 실현되는 것 아닌가.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노총이 4·11 총선에서 노동계 인사 10여명에 대한 지역구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6석 이상을 민주통합당에 요구했다고 알려졌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산술적으로 한국노총이 4년 전 옛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했을 때 4석을 얻었으니, 아예 정치통합을 한 이번에는 5~6석 이상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오가는 것 같다. 이러한 발상은 원내 의석수만으로 정치세력화 방식과 성과를 평가하는 관행 때문이다. 하지만 의석수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민주통합당과 한국노총이 어떠한 방식으로 결합해 당론을 모아 가느냐 하는 점이다.”

- 민주통합당 의결단위에서 한국노총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어떤 구상과 계획을 갖고 있나.

“의원을 10명을 배출하든 20명을 배출하든, 결국 당에 진입하는 순간 당론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는 늦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주요 의결기구마다 한국노총 지분 15%가 확보돼 있다.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에 확실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3대 과제가 선행돼야 한다. 먼저 유명무실했던 전국노동위원회를 확대·강화시켜 나갈 생각이다. 전국노동위원회가 노동정책의 수립과 심의·의결 등 당의 모든 노동 관련 사안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당 사무처에 노동국이 신설됐다. 노동국은 지금까지 정당 시스템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조직이다. 당과 한국노총·전국노동위원회를 연결하는 핵심고리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원 가입이다. 정치는 결국 ‘지지자 숫자’ 싸움이다. 대대적인 노동자 당원 가입을 통해 당의 노동부문을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당-노총 근거리 소통으로 '노조법 재개정'


- 전국노동위원회가 민주통합당과 한국노총을 잇는 매개가 될 것 같다.

“예전의 전국노동위원회는 1년에 한국노총 한 번, 민주노총 한 번 방문하는 게 다였다. 당내 발언권도 없고 인력도 부실했다. 우리는 한국노총 내 54개 지역지부와 연계해 규모과 파급력을 갖춘 노동위원회를 만들 것이다. 전국노동위원회 산하에 지역노동위원회를 두고, 각 지역에서 당원들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지역의 노동현안이 지역노동위원회를 거쳐 전국노동위원회로 모여들 것이다. 전국노동위원장은 민주통합당과 한국노총의 중간에서 노동정책 전반을 총괄하고, 당 내 노동국과 근거리 소통을 하게 된다.”

- 노동현안이 산적해 있다. 정치적 능력이 배양되면 어떤 문제부터 풀어 나갈 것인가.

“가장 시급한 현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재개정 문제다. 개악된 노조법으로 현장의 노동운동은 초토화됐다. 총선 이후 본격적인 법 개정에 나설 것이다. 한국노총 사무처만 보더라도 파견전임자 임금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없다. 법 개정을 포함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자구책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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