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단체교섭은 대부분 기업별 교섭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으나, 최근 노동계는 산업별 교섭 체제로 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는 상급노동단체들이 산업별 교섭에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기업별 교섭으로는 앞으로의 노동운동이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점과 상급단체의 위상 제고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업별 교섭은 첫째, 협상 결렬 후 파업이 발생하면 하나의 산업 전체 조합원이 파업에 가담하게 되기 때문에 국민경제에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둘째, 단체교섭시 해당 사업장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공동 요구안 관철을 위해 장기간 무모한 쟁의행위를 시도하게 되는 등 불필요한 선명성 투쟁으로 분규가 장기화되어 개인적인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셋째, 동일 업종이더라도 각 사업장의 근로조건이 상이하므로 공동기준을 설정·적용하기가 어려운 만큼, 단위사업장에서 재교섭이 이루어지는 이중교섭 가능성이 상존한다. 넷째, 대부분의 기업들이 노무관리 제도상의 차이도 많아 동일기준 결정에 대한 기업 및 근로자의 반발이 증폭될 수 있는 등 업종간(제조업과 비제조업, 성장업종과 사양업종간 등)의 임금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 노사관계 불안을 야기하는 난점이 있다.

물론 산업별 교섭을 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으나, 이들 국가들은 처음 노조 설립시부터 직종별, 산업별 체제로 출범하였기 때문에 오랜기간 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특정인들의 이익보다는 공익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교섭방법에 있어서도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또한, 1980년대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중앙집권적인 교섭제도의 경직성과 충돌하게 됨에 따라, 미국에서는 패턴교섭의 관행이 약화되고 영국과 뉴질랜드에서는 기업별 교섭추세가 급속하게 확대되는 등 교섭이 중앙에서 기업단위로 내려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따라서 기업 여건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노사가 기업차원에서 하는 기업별 단체교섭이 가장 합리적이며 경영환경의 변화에 유효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교섭방식이라는 것이 경영계의 기본입장으로서, 현재로서는 산업별 교섭을 수용할 여지가 없다. 다만, 경영계는 노동계의 산업별 교섭 움직임에 대해 그 의도와 전략을 파악하고, 해당 업종별 단체 및 기업간 긴밀한 연계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한편, 사용자측의 대응논리와 구체적 행동지침을 마련하여 근로자들을 이해시키는 등 노동계의 산업별 교섭요구에 대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사용자들도 산별교섭이 불가피한 경우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노동계는 단체교섭에 있어서 산업별 교섭을 위한 체제를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산업별 교섭이 이루어지면 노사모두에게 이로운 면도 있다. 즉,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조직이 확대되어 강력한 집중투쟁이 가능해지고,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단위기업의 조직력 약화가 예상되고 전임자 수가 축소되는 등 노사관계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별 교섭을 법으로 강제할 것은 아니다. 교섭은 엄연히 노사자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제33조 제1항의 "단결권"에는 노동조합 결성·가입의 자유, 단결선택의 자유 및 조직형태 결정의 자유가 포함되며, 노동조합법 제5조도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헌법상 단결권보장정신을 구체화하고 있어, 산업별 교섭의 강제는 헌법상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앞에서 설명한 우리나라의 경제적·법적 상황이나 세계적 추세를 고려해 볼 때 산업별 교섭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산업별 교섭을 강제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영계로서도 수용할 수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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