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화살을 쏘았다. 어디로 갔을까. 영화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영화의 법정에서 피고인 김경호와 변호인 박준은 검사와 재판장에게 마지막까지 물었다. 부장판사에게 쏜 화살은 어디로 갔느냐고. 범죄현장에 있었다던 부러진 화살을 찾아내라 했다. 그러나 영화의 법정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나라 법정에서 피고인 김명호와 그의 변호인 박훈은 부장판사를 쏜 화살을 찾지 못했으니 실화라고 내건 영화의 법정에서는 찾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걸 찾지 못하고도 이 나라 법원은 피고인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상해)으로 4년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어디로 갔을까.

2. 그저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법원에 묻고 있다. 5년 전 피고인 김명호가, 변호사 박훈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나라 법원에 묻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느냐고 지금 이 나라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묻고 있다. 수사해서 기소했던 검찰은 피고인이 쏘아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화살을 증거로 법정에 제출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아무런 예단 없이 법정에서 증거가 조사되고 검사와 피고인 사이 무기대등 원칙에 따라 공소사실에 대한 공격과 방어가 진행될 수 있도록 재판이 진행돼야 했던 것 아니냐고 묻고 있다. 피해자가 판사라고 이 나라 법정에서 예외여서는 안 된다고 이 나라 법원에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이 나라 헌법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제27조 제1항)를 모든 국민에게 기본권으로 보장한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명호의 재판에서 재판장의 행위가 법이 허용하고 있는 예외이고 재량이라고 해도 그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러진 화살을 단순히 김명호 사건에서만 찾아 달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자신의 기본권으로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 나라 국민은 법원에 법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라 했다(헌법 제103조).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하도록 신분보장을 해줬다(헌법 제106조 제1항). 그런데 지금 묻고 있다. 어디로 갔을까.

3.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할 법관은 김명호의 법정에서 부러진 화살을 찾아내도록 하지 않았다. 김명호와 그의 변호인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채택을 거부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할 법관은 김명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외면했다. 그리하여 피고인에게서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는 모욕을 당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법관의 지위 앞에 굴복했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 헌법이 정한 법관의 권한에 무릎을 꿇었다. 적어도 영화에서 김경호 재판은 그랬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석궁사건이 발생하자 대법원은 사법테러로 규정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범죄의 피해자였다. 재판에 불만을 품고 석궁 쏘기를 연습하고서 화살을 장전하고서 석궁을 겨누고 그리고 화살이 발사됐고 피해자는 상해를 입었다. 범죄는 명백했고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했다. 사법권 수호를 위해서라도 추락한 법관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징역 4년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뭐가 잘못이라는 것인가. 뭐라고 자꾸 부러진 화살이 어디로 갔을까 라고 물어서 법관을 괴롭힌다는 것인가. 그러니 이 나라에서 판사들은 영화가 이상하고 그런 영화에 감동하는 관객도 이상하다. 그러니 양심적 병역거부사건에서 무죄판결을 선고한 소신판사 이정렬조차도 자신이 김명호 교수재임용거부사건의 고등법원 주심판사였다고 밝히며 이상하다고 너무나 마음이 편치 않다고 자신의 입장을 말했다. 피해자인 박 부장판사의 진술을 믿는다고 했다. 바로 이렇다. 이 나라에서 법관은 부장판사에 대해 석궁을 겨눴던 자의 진술보다는 대법원이 사법테러로 규정하고, 같은 법관이며 고등법원 부장판사인 피해자의 말을 믿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고인과 변호인은 부러진 화살을 찾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법관의 신분보장은 국민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받기 위해서 보장된 것이다. 따라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서만 독립해 심판해야 한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이 부장판사가 뭐라 하든 관계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서 법관은 독립해 심판하라고 했던 것이다. 피해자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법관은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오히려 법관이 피해자인 석궁사건에서는 더욱더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의도적으로 했어야 했다. 그것을 통해 국민에게 법원이 어떻다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사법테러로 규정했고, 부장판사가 피해자고 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석궁을 겨눴던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헌법이 보장한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서 독립해 심판해야 할 법관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피고인과 변호인에게는 적어도 그랬다. 그리고 실화영화를 본 관객도 그랬다.

4. 법관의 독립은 법관이 스스로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싸울 때 지켜질 수 있다. 법원과 다른 법관으로부터도 독립해 심판할 수 있을 때 법관의 독립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서 그 존재의 이유를 확보하게 된다. 지금 이 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적어도 그렇지 않다고 국민은 법관을 의심하고 있다. 김명호 재판은 그것을 증폭시켰다. 법관이 그렇지 못하면 결국 법관 스스로도 지켜낼 수가 없게 된다. 김명호 사건은 교수재임용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수는 대학입시과정에서 수학문제가 잘못 출제된 걸 발견하고서 이의를 제기했다가 결국 재임용을 거부당했다. 이정렬 판사는 재임용거부가 무효라고 판결하려 했다가 변론을 재개했고 그러다 교수 자질문제로 무효가 아니라고 판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명호 교수에 대한 재임용거부가 교수로서의 정당한 이의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대학에서 교수의 독립 내지 신분보장의 문제라고 한다면 이는 법관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김명호 교수 재임용거부는 정당한 이의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이 나라 대학의 문제다. 법관으로서 정당한 이의제기나 사적 표현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법원에서 법관에 대한 재임용심사는 소신 판사를 법원에서 내치는 제도로 활용될 수 있다. 지난주 서기호 판사에 대한 재임용심사를 통해 법원은 재임용탈락을 통보했다. 김명호 교수재임용거부사건의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 교수자질을 문제삼았던 것처럼 서기호 판사 재임용탈락사건에서 대법원은 법관자질을 문제삼았다. 모두 도대체가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평가자의 평가에 의해서 교수재임용이 거부됐고 판사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서기호 판사는 “근무평정에는 법원장의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간다”며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사태에 주도적으로 관여했거나 ‘가카 빅엿’ 등 SNS 활동 등으로 찍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 판사는 “어느 법원장이 서술한 평가 내용에 ‘서 판사는 말이 잘 안통하고 폐쇄적이다’라는 식으로 돼 있어 나에 대해 마치 벽창호처럼 대화가 안 되는 사람처럼 묘사해 놀랐다”고 밝혔다. 그 동안 우리 법원은 어떠했던가. 근로자가 평가자의 근무평정이 주관적이라거 주장해도 법원 판사들은 평가는 사용자의 권한이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문흥수 전 부장판사는 근무성적이 하위 2%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서기호판사의 재임용탈락사유에 관해 상대평가에서 하위 2%에 해당한다고 탈락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상대평가를 통해서 하위 몇 퍼센트에 해당한다고 부진자로 분류돼서 관리되다가 징계당하고 퇴출당하는 노동자가 부당하다고 제소한 사건에서 법원은 근태불량, 업무해태 등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번번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니 이번 판사의 재임용탈락사건은 비단 서기호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근무평정의 공정성에 관한 문제이며, 법관의 독립성에 관한 문제이다. 석궁교수 김명호의 재임용거부사건과 ‘가카 빅엿’판사 서기호의 재임용탈락사건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지 않다. 교수 자질문제로 재임용거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던 법원은, 부러진 화살을 찾아내지 못한 법원은 결국 서기호를 판사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법관의 독립을 대법원은 지켜주지 않았고 오히려 판사재임용심사를 통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대법원이 사건을 규정했다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라고, 법관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지 못한 이 나라의 법원과 법관들이 서기호를 판사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법관의 독립과 신분보장은 법관이 스스로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싸울 때 지켜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나는 부러진 화살을 묻는다. 어디로 갔을까. 노동자사건의 법정에서 묻는다. 본래 사용자의 권한인 것이라는 판사에게 소장과 준비서면에서 묻는다. 어디로 갔을까.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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