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중 사고를 당한 건설노동자가 건설사의 공사입찰 불이익을 우려해 허위로 진료기록을 작성했다면 업무상재해일까 아닐까.

건설현장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관급공사 입찰시 자격심사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건설사가 산업재해 처리를 기피하는 풍조가 일반화돼 있다. 법원은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건설노동자가 진료기록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해도 업무상사고가 명백하다면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사 중 다친 노동자, “집에서 다쳤다”고 진술

김아무개씨는 한 건설사가 시공하는 서울의 ㄱ고속버스터미널 지하저수조 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저수조의 칸을 이동하는 도중 미끄러지면서 1.6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김씨가 떨어져 '쿵' 하는 마찰 소리에 동료들이 몰려왔고,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은 상태가 심각하다며,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고 권유했다. 당일 병원비는 병원에 함께 간 건설사 관계자가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김씨는 이튿날 한 종합병원에 내원해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좌 하지 경골 근위부 골절상’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회사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을 우려해 사고경위를 다르게 진술했다. 김씨는 두 병원 의사에게 사건의 발병원인과 관련해 "집에 있는 의자에서 떨어졌다"고 허위로 진술했다. 이후 병이 깊어지자 김씨는 뒤늦게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을 신청했다.

공단 "집 의자에서 떨어져 병과 무관"

공단은 "김씨를 진료한 두 의료기관의 진료기록부에는 '집에 있는 의자에서 떨어짐'이라고 기재돼 있어 김씨가 주장하는 재해 경위와 상병-업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처분을 내렸다.

이에 김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사고 당시 김씨는 동료와 서울의 한 모텔에서 숙박하고 있어 지방인 집에서 사고를 당할 수가 없었다"며 "최초로 방문한 병원도 공사현장 부근에 있는 곳으로 치료비를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한 점 등을 참작하면 업무상사고로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원 "의자 사고로 발생할 수 없는 골절상"

법원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관급공사 입찰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설공사의 특성 때문에 회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사고경위를 사실과 다르게 진술한 것"이라며 "공단은 김씨에게 처분한 요양급여불승인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주문했다.

법원은 판단에 대한 근거로 △저수조 방수공사 현장이 저수조 밑으로 추락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던 열악한 환경이었던 점 △김씨의 동료들이 '쿵' 하는 소리를 듣고 김씨가 저수조 바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발견했던 점 △이 사건 상병과 같은 골절상이 진료기록부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의자에서 떨어지는 정도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점 △김씨가 처음 내원한 병원이 공사현장에 위치했던 점 등을 제시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10구단28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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