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연맹 제공

"기쁘고 편하지만은 않아요. 전례 없던 일이라 저도 그렇고 밖에서도 모두 낯설어합니다. 그래도 개척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요.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짓고 경계 짓고 위계 짓는, 노동운동 내 자본주의적 질서를 없애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경계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금숙(45·사진)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당선자가 요즘 연맹 내 화제다. 채용직인 사무처 간부가 연맹 역사상 처음으로 임원선거에 나서 당선했기 때문이다. 이달 28일 취임을 앞둔 그를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채용직 간부, 조직 출신 제치고 1위

그는 지난달 26일 임원선거에서 656명의 투표자 중 425표(64.8%)를 얻어 조직 출신 부위원장 당선자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연맹 사무처 간부가 임원선거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지만 조직 출신 후보보다 높은 지지를 얻은 것도 예상밖의 일이었다. 김 당선자는 연맹 산하 사무연대노조 사무처활동가지부 조합원 신분이다.

그는 "20여년간 사무노동운동에 몸바쳐 일했던 노력과 경험을 조합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것 같다"며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대학을 갓 졸업한 91년 스물다섯 살에 당시 증권사노조협의회 전문위원으로 사무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재학 시절 생각했던 ‘졸업하면 사회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던 결심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직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90년대 초반, 사무직인 증권사에도 노조가 있다는 게 그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95년 증권사 노조들의 상급단체인 사무금융연맹으로 자리를 옮겼다. 17년간 연맹에서 일하면서 교육·선전·정책·조사 등 안 해 본 업무가 없다. 최근에는 연맹 교육선전실장을 맡아 노조활동을 밖으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돌아보면 2006년은 운명의 시간이었다. 그때 맡은 여성업무가 그를 부위원장 선거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출마 결심은 쉽지 않았다. 연맹 역사상 전례가 없었고 의견도 분분했다. 반겨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채용직의 반란 정도로 깎아 내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부위원장 여성할당제를 지켜 내야 한다는 소명감과 책임감이 저를 임원선거로 이끈 것 같아요. 여성 후보가 없었거든요. 연맹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간부가 임원이 된다면 조직발전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채용직 간부 출신 임원후보를 조직 구성원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노동운동의 빈틈 메우고 싶다”

김 당선자는 2004년 연맹 여성할당제 도입 논의에 참여했다. 2006년 여성국장을 담당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나섰다. 관심은 공부로 이어졌다. 성공회대 NGO대학원에 들어가 실천여성학을 전공했다. 지난해 2월 '여성할당제의 두 얼굴-민주노총 여성할당제 효과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 당선자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표현했다. 채용직과 노조전임자(조직출신자), 연맹 임원과 간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된 경계 그 어디쯤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는 "경계에 놓인 사람으로서 그 경계를 없애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정규직·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에서 소외된 비정규직·여성·청년 활동가들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세우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소외된 이들을 새로운 주체로 세우는 것이 노동운동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노동운동의 빈틈을 메우는 자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김 부위원장은 "20여년을 한결같이 사무노동운동에 매진했던 '연맹에 대한 극심한 애정'이 저를 떠받쳐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월가 점령시위에 참여했던 한 여성활동가가 '저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저항의 과정에서도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너른 운동을 실현해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