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 1년 중 가장 두려운 날은 12월31일이다. 기간제 비정규직은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이 날 어김없이 해고통보를 받는다. 채용 담당자로부터 구두통보를 받는 것도 아니다. 느닷없이 문자 메시지가 날아 온다. 그래서 휴대전화 문자 알림신호만 뜨면 화들짝 놀란다.

“1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2011년 12월31일 24시를 기해 용역이 만료됩니다. 2011년 12월31일 23시까지 출입증을 반납하시길 바랍니다. 24시 이후 출입할 경우 출입증이 정지돼 보안요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습니다. 이 경우 회사에선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문자 메시지는 실제 상황이다. 인천공항에서 항공 수화물에 전자태그를 붙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은 해고 통보다. 메시지를 읽은 노동자들은 손이 떨리고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장애 학생의 학교생활을 도와 온 특수교육보조원 이아무개씨도 같은 처지다. 경력 5년차인 이씨는 5번의 계약해지 경험이 있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만료돼 1년 마다 해고통보를 받았고, 다시 계약을 갱신해 왔다. 사서·급식실 조리원·영양사 등 학교에서 근무하는 기간제노동자들도 계약해지자 신세이긴 마찬가지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집단해고가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해고와 재계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렇듯 집단해고를 당하는 비정규직을 위해 여야가 최근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냈다. 민주통합당이 지난달 31일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은 2017년까지 비정규직 비율을 현재(50%)의 절반 수준(25~30%)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기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입법화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또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도 같은 기간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도 이에 맞불을 놓았다. 새누리당은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의 비정규직 고용을 폐지하고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혜택을 받는 이들만 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정규직에게도 경영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성 경영성과급을 지급한다고 했다.

여야의 비정규직 대책은 종전보다는 나아졌다.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해 온 과거와 결별한 것이다. 하지만 여야의 대책에는 구멍이 너무나 많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는 2년의 고용기간 제한이 있는데 사용자들은 이를 회피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해고사태가 되풀이 된다. 기간제 비정규직들은 1년 만 사용했다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공공기관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에서 비정규직 고용을 막겠다고 나선 것은 진일보한 것이다. 기간제법에 명시된 고용기간 제한에 이어 상시·지속적인 업무라는 사용사유 제한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사유의 범위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대상도 공공부문에 국한시켰다. 사용자들이 기간제법을 핑계로 외주화·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으로 고용방식을 전환할 경우 새누리당의 대책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 사용사유 제한을 확대하고, 간접고용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한 대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민주통합당의 대책은 새누리당보다 뒤떨어진다는 평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시, 정규직 전환지원금과 세액공제, 비정규직 임금수준 향상 등의 공약은 종전의 발표를 되풀이 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해 민주당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과 간접고용 규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마저도 이번 대책에선 쏙 빠졌다. 이러다보니 민주통합당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이 발끈하고 나선 것 아닌가.

아울러 여야의 대책에는 비정규직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기간제 노동자들은 해고가 빈번하고,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원청회사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사실상 노동기본권 행사를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데도 여야는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인색하다.

여야는 반드시 이러한 점들을 보완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효성 없는 선심성 공약이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해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해고통보를 받는 비정규직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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