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바야흐로 선거의 시대다. 보수든 진보든 선거로 그의 세상은 그려지고 있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선거로 이 나라는 돌아가고 있다. 지금 세상에선 작은 나라이든 거대한 제국이든 온통 선거가 문제고 선거로 돌아가는 선거의 시대다. 인민이든 노동자든 그의 꿈은 선거로 그려지고 그의 세상은 선거로 돌아간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바라보는 정세도, 쟁취해야 할 과제도 선거를 중심으로 인식하고 설정하게 됐다. 노동운동을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은 선거의 시대라고 말한다.

지금 이 세상에서 권력은 선거로 세워진다. 선거로 선출된 권력자와 그 권력자에 의해서 임명된 권력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국가권력이든 단체권력이든 거기가 사람으로 구성되는 조직이고 거기에 권력이 존재하는 조직이면 그렇다. 심지어 노조 등 노동자단체조차도. 물론 사람이 아니라 재산으로 구성되는 조직은 이와 별개고 그곳에선 재산의 크기가 권력을 결정한다. 자본주의단체의 꽃, 회사가 그렇다. 이렇게 사람으로 구성되는 조직에서는 선거로 권력은 세워진다.

2.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인민은 없다. 지금 민주공화국의 선거에서 인민이 없다. 민주공화국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인민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누가 자신을 위해 제대로 권력을 행사할 자인지 이것만 숙고한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에선 선거 때만 인민은 주권자라 한 루소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에선 선거 때조차도 인민은 주권자가 아니다. 권력자로 누굴 뽑아야 할 건지, 어떤 자가 권력을 자신을 위해 행사해 줄 것인지, 선거는 인민이 이걸 숙고하면서 주권자이기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인민은 선거를 통해 주권의 행사자가 권력자임을 스스로 이해하고 승복한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에서 인민은 공화국의 이름을 권력자에게 주고 권력자에 복종한다. 이 세상에서 권력장치를 모두 걷어 낸다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있고, 물건이 있다. 그곳에선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곳에서 사람이 어떤 자를 택해 자신을 위해서 명령하라 한다면 그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택한 자의 명령이라서 사람이 자유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명령하고 사람을 복종시키는 힘, 이것이 권력이다. 그러니 권력은 사람의 자유를 짓밟고 서 있는 힘이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인민의 권력이라 불리든, 노동의 권력이라 불리든 어떠한 권력이라도 권력은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자유를 빼앗고 서 있는 것이다. 자본은 상품생산과정을 통해 재생산되고 확대재생산된다. 권력은 어떨까. 자본은 물건에 관한 지배의 크기로 그 힘의 크기가 결정된다. 권력은 사람에 관한 지배의 크기로 그 힘의 크기가 결정된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서 자본은 가치를 실현하고 재생산하게 된다. 권력의 재생산은 공장과 시장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오늘 이 세상에서 권력은 선거를 통해 재생산된다. 그러니 투표소는 인민이 주권자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곳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권력이 생산되고 재생산되고 확대재생산된 곳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선거가 투표소가 권력을 재생산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것일까.

3. 심오하게 권력의 역사를 살펴볼 것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 선거를 들여다보면 된다. 국민이 없다. 복지를 말하고 정책을 말해도 그것은 국민을 위해서 권력자로서 뭘 하겠다는 것이다. 진보의 당들도, 민주의 당도, 심지어 새누리당도 국민을 위해 복지를 말하고 정책을 말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복지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그렇게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내세우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다. 그리고 국민은 투표를 해 왔다. 언제나 문제는 진정으로 누가 국민을 위한 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후보토론회·정당토론회 등 선거운동은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자이고, 자신의 정책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떠들어 댄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벌써 이렇다. 이건 무엇인가. 복지를 추진할 권력을, 정책을 추진할 권력을 선거로 국민은 투표로 뽑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선 선거 때마다 ‘국민을 위하여’를 말하고 그때마다 국민은 자신을 위해 권력을 행사할 권력자를 선출해서 권력은 재생산돼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차별되는 획기적인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그것을 추진할 힘을 달라고 압도적인 행정부와 의회의 권력을 달라고 한다면, 나아가 기존의 권력체계보다 강력한 권력체계를 달라고 한다면 그래서 국민이 투표소에서 그렇게 해 준다면 대한민국에서 권력은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니 그 권력이 취임식에서 국민의 권력이라고 선언이라도 한다면 국민은 자신이 투표소에서 선출한 권력자의 선언에 박수를 쳐 댈 것이다. 바로 이렇다. 이 세상에서 권력의 재생산은 선거를 통해 이렇게 이뤄진다. 선거로 인민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하고 인민이 자신을 위해 권력을 행사할 권력자를 선출함으로써 이뤄진다.

4. 왜 인민을 위해서가 이 세상에서 권력의 탄생이고 재생산이겠는가. 바로 선거로서 권력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인민의 투표로서 권력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선거이기 때문에 권력후보자는 인민을 위해서를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언제나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서 봉사하겠다, 일하겠다며 그렇게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외쳐 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은 온통 인민을 위해서가 지배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한번 세상을 돌아보라. 이 세상의 권력자치고 어느 누가 인민을 위해서를 외치고 있지 않은 자가 있는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도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조차도 그랬다.

그러나 인민을 위해서가 인민을 죽였다. 인민을 권력에 복종하도록 했다. 인민의 자유를 빼앗았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인민은 주권자가 아니다. 그러니 권력자를 탄생시키는 선거야말로 인민이 주권자이기를 포기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이러한 선거로 세상을 바라보고 쟁취해야 할 과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와 민주, 노동을 말하는 정당을 지지하며 그 정당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노동자를 위해서 선거로 몰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선거를 통해서는 선거를 할 때마다 권력은 강해지고 권력 앞에서 인민은 빈손이다. 이런 선거에 노동자는 노조가 지지하라는 후보에 투표하는데 권력 앞에서는 노동자는 빈손이다. 인민은 오늘도 투표소를 찾아 권력자후보가 표시된 투표용지에 투표를 할 뿐이다. 그러니 어째야 할까. 노동자를 위해서만 외쳐 대고 권력자를 선출하는 선거로는 노동자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자유조차 쟁취할 수 없다. 노동자를 위해서는 노동자를 위한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은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러니 만약 이 세상에서 선거로 노동자를 위한 무엇인가를 쟁취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건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운 자를 투표함으로써일 것이다. 지금처럼 노동자를 위해서 무얼하는 권력자가 되겠다고 해서는 그것이 노동자의 당이라도 투표로는 노동자는 자신의 자유를 빼앗길 뿐이다. 그러니 노동자를 위한 복지가 아니라 노동자가 자신의 복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내지 지위를 줘야 한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 등 고용 등 국가가 노동자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노동시간·고용 등을 스스로 집단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지위를 줘야 한다. 사업장에서 자본의 전제(專制)를 전제하고서 노동자를 위해서 무슨 근로조건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전제(專制)에 맞서 노동자가 빼앗기지 않을 수 있도록 싸워 쟁취할 수 있는 지위를 줘야 한다. 이 세상의 법질서로 봉인해 버린 노동의 자유를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서 물건에 대한 지배가 사람에 대한 지배로 되지 않도록, 오직 자신의 노동으로서만 물건에 대해서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만약 선거가 인민을 위한 권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공약하고 자신이 진정이라고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선거 때마다 인민의 자유를 확대하게 될 것이다. 권력은 축소재생산될 것이다. 인민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서, 사업장이든 국가권력의 장이든 빼앗긴 자유를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왕국에선 모든 권력은 사라진다. 그러니 지금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 사업장에서 그것이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상자에 봉인된 노동자의 자유를 외치며.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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