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
연구소 연구실장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회사의 지원을 받는 어용노조(또는 회사노조)가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KEC·유성기업처럼 민주노조 파괴 과정에서 사측이 노골적으로 어용노조를 만든 사례가 있었고, 대림자동차와 한진중공업처럼 구조조정 저지 투쟁 이후 극도의 고용불안을 느낀 조합원들이 사측 주도 노조에 회유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한 두산인프라코어·볼보건설기계처럼 수년에 걸쳐 민주노조가 현장 장악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경제위기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시행을 계기로 금속노조 탈퇴 그룹이 노조를 장악하거나 또는 과반수노조를 만든 사례도 있다.

회사측이 지원하는 노조가 현장을 장악하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노동강도다. 민주노조는 공식적 단체교섭 관계만이 아니라 작업장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다양한 교섭을 벌여 노동강도 강화를 억제시켜 왔다. 이른바 현장권력이다. 회사가 지원하는 어용노조는 공식적 단체교섭 부분을 그럭저럭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하기도 하지만 조합원들의 실제 노동이 이뤄지는 작업장에서의 권력은 대부분 사측에 내어준다. 이러한 이유로 어용노조 설립 이후 약간의 임금 인상이 있을 때에도 사실은 엄청난 현장통제·노동강도 강화를 대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대림자동차의 예를 보자. 이들 세 사업장은 모두 2010년 초에 회사가 지원하는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를 밀어낸 사례다.

먼저 이들 사업장들은 모두 어용노조 출범을 전후해 종사자수가 감소했다. 2010년 말에 상신브레이크는 1%, 대림자동차는 39%, 발레오전장은 1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자동차산업 전체적으로는 고용이 4.4%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이들 기업들의 고용 감소는 상대적으로 매우 큰 규모다. 어용노조가 금속노조를 탈퇴하며 내세운 첫 번째가 고용안정이었지만 이들 사업장에서 고용불안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그나마 해고를 면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나아졌을까. 물론 아니다. 총액으로 계산하는 임금 수준은 정체되거나 후퇴했고, 더욱 큰 문제는 노동강도 대비 임금은 다른 사업장에 비해 더욱 크게 저하됐다는 것이다. 통상 경영진들은 임금 수준을 총액 임금으로만 계산하지만 노동 지출에 대한 대가를 받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이 마모되는 정도(노동강도)에 따른 임금이 중요하다. 자본의 회계지표에서 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생산량에 비례하는 매출액(대부분 납품단가가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비 임금 비중으로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상신브레이크는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이 3% 하락했고, 대림자동차는 6%, 발레오전장은 6% 하락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매출액 대비 임금은 평균 0.9% 하락에 불과했다. 이들 기업들이 새로운 설비개선 투자를 한 것도 아니니 임금에 비해 노동강도가 업계 평균보다 더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한편 어용노조와 민주노조가 현장에서 경합하고 있는 유성기업은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유성기업 사측만이 아니라 파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던 현대차 원청까지 관계돼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사측은 유성기업 사측이 민주노조와 더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납품단가 인상이라는 실탄을 경영진에게 주고 있다. 유성기업의 실린더링 납품가격은 2010년 말에 비해 2011년 하반기 자그마치 23%가 인상됐다. 2011년 다른 1차 부품사들의 납품가는 대부분 0~2% 내외에서 인상됐을 뿐이다. 엄청난 특혜다. 유성기업은 현대차의 독려 속에 2011년 3분기까지 지난해 동기에 비해 89% 순익이 늘어났다. 사측은 순익 증가를 민주노조가 힘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어용노조는 이를 자신의 성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현대차가 민주노조 탄압 비용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용노조에 원청까지 가세한 유성기업에서 노동강도는 14%가 넘게 강화됐다. 유성기업은 현대차가 개입해 매출액이 왜곡돼 있기 때문에 위 방식과 달리 생산직 임금 대비 제품의 실제 생산량을 가지고 노동강도를 측정했다. 유성기업은 올해 3개월이 넘는 직장폐쇄와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의 대규모 장기 농성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2010년에 비해 2% 남짓만 줄었다. 엄청난 노동강도 상승이 있었고, 민주노조를 현장에서 밀어낸 어용노조가 회사측에 현장통제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한 번 올라간 노동강도는 웬만해서는 다시 완화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장의 관행은 올라간 노동강도에 맞춰 변한다. 노동강도 상승은 노동자들의 건강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고용과 임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본은 아무런 비용지출 없이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다. 즉 고용·임금·노동강도 모두 한두 해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예로 2005년 금속노조를 탈퇴한 경주의 동진이공은 5년간 매년 4%씩 고용이 줄었고, 매년 2% 이상 노동강도가 증가했다.

2010년 이후 어용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의 조합원들은 현재의 고용 불안과 사측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민주노조 재건에 나서야 한다. 어용노조 하에서는 고용도 임금도, 건강도 지킬 수 없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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