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현장 인천지사)

2012년 1월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 나는 이 영화를 사라진 증거물인 부러진 화살에 대해서 사법부가 그들만의 논리와 사법서비스를 이용하는 민간인의 상식적인 요구 사이의 충돌을 그린 이야기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경험을 정리한 이야기입니다.

S버스는 전국 20여개 버스 계열사를 거느린 SN이라는 자본의 계열사이고, 대부분의 계열사에는 이미 한국노총이 노조 깃발을 꽂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를 금지시킨 족쇄가 있던 2009년 당시 그 틈바구니에서 민주노조 깃발을 꽂고 시원하게 사표를 던지겠다던 김경철(가명) 기사님은 두 번의 해고를 당했고 지금은 개인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김경철씨는 민주노조를 바라는 민주버스노동자회 회원이었습니다. 근무가 없는 때 인천의 각 정류장을 다니며 ‘버스노동자’라는 타블로이드판 유인물을 돌리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런 김씨는 회사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였겠지만 노총 자동차노련 지부에서 봐도 노사상생을 방해하고 조직을 음해하는 불순분자였을 것입니다.

SN자본은 S버스를 인수하면서 고용보장을 약속했지만 1년 뒤 S버스 노선 한 개를 자기 계열사인 다른 회사로 양도하기로 했고 김씨는 이를 고용보장 약속 위반이라며 입바른 소리를 해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있던 당일, 노련 S버스지부 대의원대회 자리에서 노조가 회사의 노선양도를 용인하는 결의를 해 버렸습니다. 이후 대의원대회는 신속하게 끝났고 회사 구내식당에는 술과 안주가 펼쳐졌으며, 김경철씨는 뒤풀이에서 허탈해하며 술을 마셨는데 이를 본 지부 임원(총무) 심아무개씨가 밖에 나가 한잔 더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2차 자리에는 관리부장인 박아무개씨가 동행했습니다.

2009년 3월25일. 2차 술자리를 마치고 만취한 김경철씨는 사업장으로 돌아와 구내식당에다 대고 밥을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식당 문이 열리지 않자 식당 창을 깼고 바지를 벗는 난동을 부렸으며 관리부장과 노조 지부 총무를 폭행하고 출동한 경찰에게까지 난동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디지털카메라에 찍혀 폭행·상해죄 고소사건과 징계해고 사건의 증거가 됐습니다. 이에 회사는 김씨를 과속이 잦아서 운행질서를 문란하게 했던 점과 뺑소니 사고를 유발했다는 점을 추가해 징계해고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실은 이랬습니다. 2차 술자리를 김경철씨와 같이했던 관리부장 박씨, 노조 총무 심씨, 즉 폭행·상해 사건의 피해자들은 전혀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김경철씨만 지나치게 만취했습니다. 게다가 김씨의 만행이 찍힌 사진은 관리부장 박씨와 노조총무 심씨의 작품이었고, 박씨가 찍은 사진에는 심씨가 사진을 찍는 모습이, 심씨의 사진에는 그 반대 상황이 엿보였습니다. 더구나 김경철씨가 위 사건을 목격한 가스충전소장 등 목격자 2명과 통화했을 때 그들은 박씨와 심씨가 몸도 못 가누는 김경철씨를 어린아이 놀리 듯 했고 그런 김씨를 경찰이 무자비하게 제압했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은 회사 옥상에 설치 된 CCTV에 모두 녹화돼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이에 김씨는 경찰서에서, 노동위원회에서, 그리고 폭행상해사건 형사재판에서 해당 CCTV를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어느 기관에서도 이를 조사하지 않았고 회사는 이미 녹화 보존기간이 지나서 삭제됐다는 이유로 이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경철씨는 오로지 박씨와 심씨가 찍은 사진과 그들의 진술과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진술에 따라 유죄가 선고됐고 그 결과에 따라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기각됐습니다.

한편 회사는 위 사건 당일 폭행·상해 사건 만으로는 김경철씨를 해고시키기 불안했는지 김씨의 운행정보만 별도로 채증(위 사건이 발생한 3월부터 징계해고 된 7월 사이 채증)해서 새벽 4시에서 새벽 7시 사이 과속 운행을 상습적인 과속이라 했습니다. 또 징계해고 1년 전 김씨가 운전하던 버스에서 하차하던 승객에게 발생한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김씨의 탓이라며 징계사유를 추가했습니다. 아무튼 이 회사는 노동자 하나 자르려고 치사하게 징계사유를 늘어놓았습니다. 게다가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이 기각된 뒤 김씨가 택시운전을 하게 된 과정도 역시 기가 막혔습니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2번 해고됐는데, 첫 번째 해고는 절차위반의 부당해고로 인정돼 임금도 받고 복직도 했습니다. 회사는 징계사유를 갖다 붙이는 데만 신경을 썼지, 징계 절차는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고 복직 다음 날 다시 징계위원회를 통보해 똑같은 사유로 김씨를 다시 해고했고, 김씨는 바로 그 두 번째 해고 사건에서 졌습니다. 그런데 절차위반으로 김씨를 복직하게 했던 첫 번째 해고사건 판정문을 보면, 조목조목 회사가 주장한 모든 사유별로 중대한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즉 이처럼 친절한 판정문이 도착하자 회사는 곧 바로 김씨를 다시 해고한 것입니다. 이처럼 지노위가 친절하게 징계사유가 중대하다고 인정해 놓은 이상 두 번 째 해고에서 회사는 절차문제만 차례차례 해소하면 됐고, 결과는 기각판정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김경철씨는 불복하겠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고, 금방 다른 시내버스 회사에 재취업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금방 재취업할 수 있었던 경위가 불 보듯 눈에 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흘도 채 근무하지 못하고 다시 해고됐는데, S버스가 소개해 준 다른 버스회사는 김씨의 혈압이 너무 높다면서 본채용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지금 김씨는 개인택시를 몰게 된 것입니다.

징계는 사용자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증이 있어야 정당합니다. 그래야만 재량권 남용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징계사유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해고사건의 정·부당성을 가리는 데 필수적입니다. 즉 위 사건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증은 당연 CCTV 녹화 내용 확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CCTV는 처음부터 당연히 배제됐고, 김경철씨의 폭행·상해죄와 징계해고 건은 이렇게 결정됐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증이 없을 때 사건을 결론짓는 행정관료들의 방식, 사용자의 입증책임에 관대한 그들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엿본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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