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쌍용차 희망퇴직자 강아무개(53)씨의 부인 최영화(54)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남편의 죽음을 의외로 담담히 받아들였다.

최씨는 31일 오후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희망퇴직 후 3년간 남편은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었다”며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이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2009년 4월 남편 강씨는 희망퇴직자로 분류돼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회사측은 수시로 강씨를 찾았다.

“남편은 프레스생산팀에서만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었어요. 팀원 대다수가 빠져나간 상황에서 기계가 고장 나고 공정이 막히니까 회사 입장에선 남편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럴 때마다 남편이 불려 나갔어요.”

최씨는 그런 남편에게 모진 말을 했다. “일당 몇 푼에 자존심을 팔지 말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복직에 대한 희망 때문에 그랬을 수 있겠다 싶어 짠한 마음과 함께 후회가 밀려온다고 했다.

어느 날부턴가 쌍용차가 더 이상 남편을 찾지 않았다. 내심 바라던 일이라 최씨는 전후 사정을 묻지 않았다. 회사 호출이 없어지자 남편의 표정이 몰라보게 어두워졌다. 집에서 툭하면 혼자 소주를 마셨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남편 주량이 늘었어요. 1병이면 취하던 사람이 6명을 넘게 마셔야 쓰러져 잠들더군요. 밤낮 가릴 것 없이 술만 마셨어요. 사람과 섞여 안방에까지 소주병이 가득했습니다. 점잖던 사람인데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어요.”

몇 개월을 지켜본 최씨는 2010년 초 남편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의 증상은 쉬이 치료되지 않았다. 입원 후 한두 달 괜찮아졌다 싶으면 어느새 또 술을 마셨다. 네댓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이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남편이 벌어놓은 돈은 바닥을 드러냈다. 최씨는 남편 치료비와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가사도우미일을 시작했다. 그런 최씨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을까. 강씨는 차츰 술을 줄이더니 슬슬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강씨는 같은해 7월 의자나 침대 등을 생산하는 지역의 한 가구생산 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지나친 폭음으로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다른 공장에도 일자리가 생겼지만 마찬가지였다.

강씨는 아직은 무리겠다 싶어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퇴사 후 처음으로 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바로 그 순간 그에게 죽음이 찾아왔다. 당시 최씨는 구정을 앞두고 강원도 시댁에 있었다. 그날 밤 남편에게 안부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이웃에 부탁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라고 했다. 강씨는 이미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최씨는 “평생을 바쳐온 일터에서 쫓겨난 일이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쌍용차뿐 아니라 세상 누구도 이런 무서운 일을 함부러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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