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시간 단축하겠단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은 장시간 근로를 시정할 방침을 밝혔다. 정부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뭐라 해야 할까. 이 나라 노동자는. 노사가 열린 마음으로 머릴 맞대고 방법을 모색하면 임금 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박종길 노동부 근로개선정책관이 말했으니. 당연히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그런데 이미 우리는 주40시간 노동제의 나라다.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2004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됐다. 지난해 7월부터는 2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이렇게 이 나라 노동자는 모두 법적으로 주 40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지금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걸 추진하겠다는 정부에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근로기준법은 당사자가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정해놓았다. 그러니 주 40시간에다 12시간 연장근로는 기본인 거고 거기다 휴일근로까지 더하면 1주간에 60시간이고 70시간이고 근로를 해도 이 나라에선 금지하지 않고 사용자를 처벌하지도 않았다. 버젓이 현대자동차 등 이 나라의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상시적인 주야 2교대로 이렇게 노동자는 근로하고 있다. 휴일근로는 1주간 12시간까지 허용되는 연장근로가 아니라고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하고 그래서 이 나라 사용자는 노동시간에 관한 법적 규제를 받지 않고 맘대로 노동자를 사용해왔다. 그래서 정부가 연장근로시간에 휴일근로시간을 포함시켜 주는 걸 추진하겠다니 이 나라 노동자는 그거라도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돼도 1주간에 52시간을 초과해서는 근로하지 않을 것이니까. 지금처럼 60시간 넘게 주야로 돌아야 하는 노동자에겐 그거라도 감지덕지고 임금 감소 없이 그럴 수 있다니 당연히 열린 마음으로 사용자와 머릴 맞댄다는 것이 뭐가 문제겠는가.

지금 이렇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고작 이렇다. 주 52시간 근로라도 감지덕지다. 근로기준법은 엄연히 주 40시간 노동제라고 하는데도 이 나라 노동자는 주 40시간 노동제의 노동자가 아니다. 지금 정부가 천명한 대로 강력하게 추진해서 실현시켜 줘야 겨우 1주간에 52시간을 초과한 근로를 하지 않게 되니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법률로 정하고 있는 주 48시간 노동제는 이 나라 대다수 노동자에게는 아직은 먼 꿈일 뿐이다.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44시간 노동제가, 지금은 주 40시간 노동제가 됐다는데도 여전히 주 48시간 노동제조차도 이 나라 노동자가 꿈꾸는 세상이다.

2.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일까. 근로기준법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했다. 분명히 주 40시간 노동제의 나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정부가 천명한 대로 시정되더라도 주 52시간 근로를 해야 하는 이 나라 노동자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게도 이걸 묻는 게 당연하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한마디로 대답해 주겠다.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를 규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 합의로 그것을 초과해서 시간외근로, 휴일근로를 할 수 있도록 정해놓았다. 그러니 어떻게 주 40시간 노동제를 강제할 수 있겠는가. 주 40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근로기준법은 ‘기존의 임금수준 및 시간당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고 부칙으로 정해놓았다. 이건 주 44시간 노동제에 따라 실제로 근로하던 노동자가 주 40시간으로 단축되는 경우에는 주 44시간의 근로에 대한 임금총액을 주 40시간의 근로로 보전받아야 하는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 50시간·60시간·70시간을 근로하고 있는 근로자에게는 주 44시간 노동제가 주 40시간 노동제로 변경됨으로 인해 기존의 임금수준이 총액에서 저하되지 않아야 한다거나 시간급 통상임금에서 저하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자신의 실제 근로시간 단축이 될 수 없는 조건의 노동자에겐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노동시간이 단축된 게 없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근로는 쇠사슬에 묶여 채찍에 의해서 강제되는 노예의 노동이 아니다. 근대자본주의 법질서는 노예의 노동을 금지시켰다. 어떠한 경우라도 노동자의 근로는 당연히 노동자가 그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서 근로하는 것이고 그러니 그 시간외, 휴일의 ‘근로’는 당사자 합의가 전제돼 있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뭐가 되는가. 당사자 합의로 1주간에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는 근로기준법 제53조는 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정한 근로기준법 제50조의 예외적인 허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허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제53조로 제50조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근로기준법 제53조를 사용자는 연장근로의 제한이 아니라 연장근로의 보장으로 읽는다. 노동부 행정해석도 법원 판례도 사용자가 연장근로의 보장이라고 읽는 것은 오독이라며 시정하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사자 합의는 연장근로를 할 때마다 그때그때 할 필요도 없고, 근로계약 등으로 미리 약정하는 것도 가능하며, 단체협약에 의한 합의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1990.1.12 근기 01254-450, 대법원 1993.12.21 선고 93누5796 등). 연장근로를 할 때 그때마다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가 아니라 근로계약 등으로 미리 약정할 수 있고 단체협약으로 이를 정한다면 그건 일정기간 상시적인 연장근로의 합의고 그건 연장근로가 일반화되는 것이며 통상근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건 법정 근로시간으로 규제될 대상이다. 더구나 서면합의 요하는 것도 아니니, 근로계약·단체협약 등 이런 당사자 간 합의로 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하는 것과 도대체 다름이 없다. 도대체가 근로계약에서 소정근로시간을 당사자 합의로 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근로기준법, 고용노동부 행정해석과 법원 판결로 주 40시간 노동제는 이 나라 노동현장에선 주 52시간 노동제가 됐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용노동부는 휴일근로는 1주간 근로시간에서 제외된다고 행정해석해 주 52시간에 휴일 근로시간까지 포함해서 1주간에 상시적인 60시간, 70시간의 교대제 사업장을 만들었다. 그러니 이 나라 노동자의 세계적인 장시간 근로는 법과 정부·법원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노동법학자라고 하는 누구도 이걸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근로기준법에서 노동법 교과서에서 주 48시간 노동제가 주 44시간 노동제가 되고, 다시 주 40시간 노동제가 됐다 해도 그건 노동자에겐 그 노동제가 쟁취된 게 아니었다. 노동자는 여전히 기존대로 근로해 왔던 것이다. 단지 시간외 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을 지급기준이 되는 법정(기준)근로시간의 단축만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 주 40시간만 근로하고 있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살펴본 당사자 합의로 언제든지 주 52시간까지는 근로하게 되는 것이니 당신도 주 52시간 노동제의 노동자인 건 차이가 없다.

3. 그러니 어째야 하겠는가. 이 나라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한다면. 주 40시간 노동제를 단순히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무용한 것으로 되지 못하게 입법으로 규제하고 기존 임금총액을 단축된 노동제에서 보장되도록 법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법이 마련되지 않은 조건에서는 노조는 이것을 단체협약으로 사용자에게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추진방침에 대해 노동부 담당자는 “노동생산성을 제고하면 임금이나 생산량 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느니 “노사 모두 열린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정책담당자는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과 임금·근로조건 저하 등을 고려해 별도의 지원제도 마련이 강구돼야” 하니 “이를 위한 노사정 간의 진지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량 감소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거라면 새로운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 한 노동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건 60시간·70시간의 생산량을 52시간에 작업하라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부담에 대한 지원은 결국 사용자가 지급해 왔던 임금을 세금으로 보충해 주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또는 권력까지 포함해서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해 봐야 결론은 이렇게 정해져 있다.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했다. 왜 노동시간 단축이 수백년 노동자에게 고통의 길이었던 노동운동의 역사라고 말했겠는가.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기존 물량을 채워준다고 하는데, 세금을 통해 국가가 사용자를 지원해 주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본에 아무런 손해가 없으니 얼마든지 노사가, 혹은 노사정이 머릴 맞대고 합리적으로 대화를 하면 해결될 일인데 괜히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에게 총파업투쟁하라고 해서 고통을 주고 심지어 학살까지 당하게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8시간 노동제를 주창하다 교수형을 당한 메이데이의 지도자들조차도 비난받아야 하고 5월1일은 잘못된 노동운동을 규탄하는 날이 돼야 마땅했다. 그게 아니니 다른 묘수가 없다. 노자 간의 투쟁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으로 해결하려는 방법도 어차피 세금이 자본에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면 묘수가 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의 권리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자본의 부담으로 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슨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겠는가. 방법은 명확한 것이고 문제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쟁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노동시간 단축이 이 나라 노동운동의 일이 된 것은 주 48시간, 주 44시간, 주 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될 당시 노동운동이 이걸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이 될 수 있도록 노동자 권리로서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리로 쟁취하지 못한 것은 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해도 결국 노동자의 권리로 될 수가 없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어제의 일을 오늘의 일로 해 내야 한다. 노동자 권리를 위한 노동자의 운동에서 꼼수는 없다. 노동운동이 노동자를 투쟁에 나서도록 하지 않고서 뭔가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노동과 자본, 또는 권력까지 포함한 노사 또는 노사정 사이의 절충과 양보 말고는 없다. 거기서는 하나의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노동자권리를 내줘야 한다. 이런 세상에선 노동이 아무리 노사나 노사정이 참여해서 열심히 합리적 대화를 한다 해도 기존 노동자의 권리수준을 총체적으로 높일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도 예외가 아니다. 임금이든, 노동강도든 뭐든 내줘야 한다. 그러니 문제는 진정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하고자 한다면 그건 그 쟁취를 위한 투쟁에 노동자를 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노동시간 단축 앞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이것이 문제다. 다른 길은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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