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대상판례/ 헌재 2009헌마330, 2009헌마344(병합)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 등 위헌확인

지난해 12월 말 헌법재판소는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결과는 각하. 지난 2년 반이라는 시간에 대한 기다림치고는 너무 허무했다. 예상했던 결과였던지 언론에서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결정을 받아 들고 작게는 결정문에서 드러난 문제와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기능에 관해 생각해 봤다.

먼저 결정까지 이르는 과정에 관한 아쉬움이다. 각하에 2년 반이라니. 아예 심사 대상조차 되기 어려웠다면 이토록 오래 끌 필요가 있었나 하는 원망이다. 크게 고민한 흔적도 없다. 관여 재판관 전원의 합치된 의견이라는 헌법재판소장의 자랑까지 있었다.

결정 2년 반이나 끈 이유는

시시비비의 판단 못지않게 신속성 또한 주요한 사법기능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뒤늦은 결정은 의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각하 결정에서는 신속성이 더욱 중요하다. 요건을 갖출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라면 제기의 의의는 사라지기 십상이다. 분쟁이 종결됐거나 부당한 현실의 힘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더 이상 바꾸기 어렵게 된다. 이번 결정도 같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 시행된 지 3년, 이미 공공기관 노사관계는 많은 것이 정해진 이후이지 않은가.

때늦은 결정은 헌법재판소 스스로 신뢰를 훼손시켰다. 나아가 오해까지 불러온다.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다. 헌법소원 청구에 대한 인용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서슬 퍼런 시절을 피해 정권이 그 힘을 잃어 가는 때를 기다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몇 장 되지 않은 각하 결정이었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각하 결정 이유는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과 고용노동부장관과 감사원장의 공공기관 노사관계 개입 모두가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라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공권력이 아니라면 지난 4년 이 사회를 휩쓸고 간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의 행위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정부가 한 공권력 행사는 위법하지 않은가. 결국 공공기관 종사자들과 노조는 따르지 않아도 될 정부정책을 따른 우스운 꼴이 된 것인가. 속 시원히 설명해주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공공기관 선진화가 공권력 행사 아니라니

헌법재판소법에서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헌법소원 청구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남소 방지와 보충적 기능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공권력의 행사를 엄격하게 해석해 왔다. 단순한 행정계획이나 행정지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로 볼 수 없다는 결정(헌재 2000.6.1 선고 99헌마538 등, 헌재 2003.6.26 선고 2002헌마337 등)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 사건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과 고용노동부장관과 감사원장의 공공기관 노사관계 개입은 단순한 행정계획이나 행정지도가 아니다. 적어도 “기본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앞으로 법령의 뒷받침에 의해 그대로 실시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예상될 수 있을 때(위 99헌마538)”이거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을 경우 일정한 불이익조치를 예정하고 있어 사실상 상대방에게 그에 따를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를 넘어 규제적·구속적 성격을 상당히 강하게 갖게 되는 경우(위 2002헌마337)”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공공기관선진화계획 중 다수는 각종 입법으로 구체화됐다. 이행 결과에 따라 공공기관 조합원들의 임금이 결정됐고 이행 성과에 따라 퇴출된 공공기관의 장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기준에 따르더라도 법에서 요구하는 공권력 행사가 분명하다는 말이다. 제도화돼 시행되고 그 피해를 입고 있는 노조와 조합원들 중 누가 위 결정에 동의하겠는가.

따라서 각하할 것이 아니라 본안 심리를 했어야 한다. 결과도 분명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의 상당 부분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 정책 오류를 스스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졸초임 삭감 정책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대졸초임 삭감 정책을 폐기했다. 초임을 삭감해서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비전은 온데간데없고 거짓말과 불공정 사회만 남았다. 공개적인 반성은 없었지만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의 잘못이 인정된 셈이다. 눈치를 볼 부담도 없었다.

기본권 보장 마지막 보루 역할 의문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해 담고 있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 대통령을 포함한 각 헌법기관에 일정한 임무를 부여한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주요 책임은 바로 기본권 보장이다. 이를 위해 헌법(제111조)에서는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기본권’을 두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행사한 공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자를 위해 존재하는 헌법기관이어야 한다. 국민 기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라고 이름 붙이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늘고 있다. 기본권 침해를 입었다고 억울해 하는 국민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도 같다. 공기관선진화계획은 이 정권 초 국정 최대 사업이었다. 마치 공공기관이 공공의 적인 냥 정부는 몰아갔다. 노조 말고는 변호하는 자도 없었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독립된 감사원과 같은 독립 헌법기관까지 동원됐다. 모든 언론까지 동원돼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몰염치한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버렸다.

공공기관 소속 노조와 조합원들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힘을 앞세운 정부의 정책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헌법재판소였다. 양대 노총 소속 공공기관과 소속 조합원들의 소원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대한 제지였다. 이들 염원을 헌법재판소는 보지 못했다. 아니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회문제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역할은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 바라건대 그 중에도 위법한 행정에 대한 사법통제가 강화돼야 한다. 대통령 주도의 행정부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행정부 일방주도의 국가정책의 위험성과 그 결과가 국민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 우리는 겪을 만큼 겪었다. 이번 공공기관선진화계획도 그랬다. 선진국에 진입하겠다던 정권이 내놓은 정책이 개발시대와 다르지 않았다. 내용과 절차에서 모두 위헌·위법이었다.

헌법재판소 기능 강화를 위한 시작은 헌법소원 요건을 완화다. 이번 결정에서 보듯 ‘공권력 행사’의 개념을 넓혀서라도 구제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넓게는 반드시 인적 구성원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다. 법관뿐 아니라 제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에 더 큰 믿음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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