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
연구소 연구실장

로이터통신이 지난 11일 보도한 지엠의 생산물량 이전 보도가 한국지엠 노동자들을 흔들었다. 독일 금속노조와 지엠 본사가 지엠 유럽법인인 오펠(OPEL) 회생을 위해 공장 운영비용 절감(주로 임금삭감안)을 전제로 한국공장 생산물량 이전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지엠의 공식보도가 아니었지만 보도 다음날 아카몬 한국지엠 사장이 급작스레 사임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생산물량이 고용과 임금에 직결되는 자동차 사업장 전반이 항시 이런 물량 걱정에 시달리지만,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2001년 매각과 정리해고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 불안이 더욱 컸다.

오펠에서 현재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 중인 차종을 실제 생산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20세기 초부터 세계적으로 공장을 운영해 온 지엠은 국제 공장 간 물량, 신차 경쟁을 통해 노동자를 관리해 온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실제 생산물량을 이동하지 않더라도 지엠은 이러한 압박을 통해 상당한 이득을 얻는다.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시기였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반 지엠은 북미에서 공장폐쇄 계획을 밝히면서 물량·차종을 가지고 공장 간 임금저하 경쟁을 붙였다. 이 경쟁 속에서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된 것은 물론 물량 이동에 따라 노동자들이 전국을 이리저리 이동해 다녀 언론에서 이를 ‘지엠 집시들’이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크게 낮아진 것은 물론이다. 2009년 세계 경제위기 과정에서도 비슷했다. 미국공장 폐쇄 계획을 언론에 슬쩍 흘리면서 각 공장 노동자 간 경쟁을 격화시켰고, 심지어 오펠 공장이 있는 독일·영국·스페인·벨기에에서는 각국 정부를 상대로 구제금융 지원액, 노조의 임금삭감액을 경쟁시켜 공장폐쇄를 결정하기도 했다. 지엠은 많은 것을 얻었고, 바닥을 향한 경주라 할 만한 이 물량 경쟁에 뛰어든 모든 노동자들은 임금을 함께 삭감당했다.

지엠이 독일 금속노조를 통해 오펠과 한국 간의 물량 경쟁을 언론에 흘린 것도 비슷한 경우다. 지엠은 현재 독일 금속노조에 오펠의 임금을 크게 삭감하고 노동조건 규제를 풀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연 3천억원가량의 비용 절감을 달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의 앞뒤 관계를 밝히면 군산공장 생산차의 폴란드·독일 이전보다 유럽 오펠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 요구가 먼저였다. 생산물량 이전은 차라리 미끼에 가깝다. 독일에서 독일 금속노조의 양보를 받아내면 그 다음은 한국에서 한국지엠지부에게 양보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이미 한국지엠 경영진들은 비용 절감 문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지엠 노동자들을 쪼고 있었다.

한국 노동자들의 선택은 독일과의 물량경쟁이 아니라 지엠 본사에 대한 교섭이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 사장들은 바지사장에 불과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으며, 본사가 한국·독일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기며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 역시 명확해졌다.

물량 이전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차라리 이 기회에 아예 본사에 임금·교대제 관련 요구를 강하게 해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오펠 노동자와의 물량·비용 경쟁이 아니라 본사를 상대로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강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경제위기 때는 외환거래로 자본을 유출하고, 2010년 이후에는 저가 수출을 통한 간접적 자본유출을 계속하고 있는 지엠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 금속노조와 오펠 종업원평의회 역시 물량 이전 요구가 아니라 본사에 맞선 싸움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지엠지부와 금속노조는 산업은행에 대해서 역시 제대로 된 요구를 해 봐야 한다. 산업은행은 17%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사회 비토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엠 본사에 언제든지 1조6천억원 상당의 우선주 상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중 우선주 상환 요구는 미국 본사에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물론 산업은행이 쌍용차에서 해 온 짓을 생각해 보면 자발적으로 강한 요구를 할리는 만무하다. 적당히 정치적 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와 한국지엠지부가 이 기회에 산업은행에 대한 투쟁을 다시 한 번 재조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지엠 생산물량의 유럽 이전은 소동으로 그칠 가능성도 다분하다. 로이터의 독일 금속노조 관계자 인터뷰가 아직까지는 사실관계의 전부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이 번 기회에 본사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